레오나르도, 익명에 의해 동성연애자로 기소되다
작품을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당시 피렌체에는 남색이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증거는 없지만 베로키오가 동성연애자란 소문이 있었고, 결혼을 하지 않은 많은 예술가들이 남색을 즐겼다는 설도 있습니다. 피렌체 사람들이 남색을 얼마나 즐겼는지는 독일에서 피렌체인이란 말 플로렌저Florenzer가 동성연애자를 의미한다는 데서 알 수 있습니다. 1500년경 레오나르도와 어울렸던 화가 안토니오 바치는 공공연하게 동성연애자임이 알려져 있었고, 별명은 남색이란 뜻의 일 소도마Il Sodoma였습니다.
1476년 초, 스물네 살의 레오나르도는 익명에 의해 동성연애자로 기소되었습니다. 당시 피렌체에는 익명으로 고소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 사기, 살인모의, 강간 등을 쉽게 고소할 수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열일곱 살의 야코포 살타렐리와 남색을 벌인 것으로 기소되었습니다. 야코포는 금세공 도제로서 소문난 남창이었습니다. 그때 기소된 사람은 레오나르도 외에 두 명이 더 있었습니다. 또 다른 기소자들 중 하나는 금 세공가 바르톨로메오 디 파스퀴노였고, 다른 하나는 재단사 리오나르도 데 토르나부오니였습니다. 첫 법정심리는 1476년 4월 9일에 열렸습니다. 법정은 비교적 공정하게 사건을 처리했는데, 충분한 증거와 증인의 서명이 있는 내용을 제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제출되지 않았으므로 법정심리는 6월 7일로 연기되었고, 검찰이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레오나르도와 두 명의 젊은이는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 해결의 전말에는 메디치 가문의 압력이 있었습니다. 기소자 중 리오나르도 데 토르나부오니의 성은 로렌초 데 메디치의 어머니 성으로, 이 자의 기소는 곧 메디치 가문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함을 의미했습니다. 이 때문에 메디치 가문은 법정에 압력을 넣었으며, 레오나르도와 나머지 한 명도 그 덕에 풀려나게 된 것입니다.
레오나르도가 남색을 즐겼다는 증거가 없어 사실의 여부는 알 길이 없지만, 그는 여자를 사랑한 적이 없고 여자를 친구로 둔 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잘생긴 젊은 사내들과 어울렸습니다. 그가 남자 누드를 많이 그렸으므로 그들이 단지 모델이었는지 아니면 동성애 상대들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여자에 대한 그의 관심은 얼굴, 손, 몸동작에 국한되었고 젊은 남자의 경우에는 인체의 모든 부분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해부학에 관심이 생겼을 때 그는 남자의 생식기 구조를 묘사하면서 남자의 성기를 다양하게 표현했습니다. 그가 여자의 은밀한 곳을 드로잉한 건 단 두 차례뿐이며 과장되었습니다. 또 다른 페이지의 기계에 관한 드로잉에서 그는 남녀의 섹스 행위를 묘사했는데, 두 개의 남성의 성기가 만나는 모양으로 그렸습니다. 또 다른 페이지에는 음경이 남자의 엉덩이를 향한 것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남자의 성기에 관해 적었습니다.
“종종 성기는 주인의 허락이나 생각과는 무관한 자체운동을 한다. 남자가 깨어있거나 잠들었을 때 성기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주인이 행동을 개시하기를 원하지만, 성기는 이를 거부한다. 성기는 종종 행동하기를 욕망하지만, 주인이 이를 금한다. 이렇기 때문에 이 창조물은 종종 주인과는 별개로 자체의 삶과 지성을 가지는 것이며, 남자는 그것에 명칭을 붙이거나 보여주기를 부끄러워하는 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는 그것을 가리고 숨길 것이 아니라 미사에서의 신부처럼 엄숙하게 드러내야만 한다.”
레오나르도의 드로잉은 다분히 자기 고백적입니다. 사생아로 태어나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으며, 아버지는 두 아내를 땅에 묻고 세 번째 아내를 맞았고, 어머니는 의붓동생을 넷이나 낳았으며, 아버지의 세 번째 부인 또한 의붓동생을 낳았습니다. 이런 것들이 레오나르도에게 성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레오나르도의 어린 시절에 관심이 많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어린 시절 기억 A Childhood Memory of Leonardo da Vinci』(1910)을 출간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새가 나는 장면을 스케치한 종이 뒷면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내가 가장 어렸을 적에 관한 기억들 가운데 하나인 솔개에 관해 상세하게 기록해야 할 것 같다. 난 그때 요람에 있었던 것 같은데 솔개 꼬리가 내 입을 열게 만들었고 꼬리는 속 입술을 여러 차례 쳤다.”
여기서 프로이트는 솔개를 독수리로 잘못 알고 독수리 꼬리를 어머니의 젖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는 레오나르도가 왜 독수리라는 새를 선택했는지에 관해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이에 대한 해석을 위해 이집트 신화까지 들먹이며 진지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는 레오나르도의 노트북을 독일어로 번역한 책을 참조했는데, 사실 레오나르도가 니비오nibbio(솔개)라고 쓴 것을 독일어 번역자가 독수리Geier로 잘못 번역한 것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번역자의 실수로 빚어진 대학자의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여하튼 프로이트가 처음으로 레오나르도의 출생과 부모의 헤어짐을 앞으로 형성되는 그의 성격에 매우 심각한 문제로 제기했습니다. 그는 레오나르도가 어머니에 대해 가졌던 상반되는 감정교차를 해독하여 레오나르도 내면의 갈등을 분석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부지불식간에 어머니가 자신을 버린 데 대한 책임이 있다는 ‘냉담한 어머니’에 대한 관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이로 인해 레오나르도가 억제된 성적 욕구를 동성애로 진전시켰으며, 결국에는 모든 성적 행위를 거부하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순화현상이 그로 하여금 지적 관심과 ‘탐구의 본능’을 한층 강화시켜서 그의 예술적 창조성을 손상시켰다고 보았습니다. 어린 레오나르도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이별에 대한 마음의 상처를 입고 또 입었을 것이며, 어머니가 딴 남자로부터 의붓동생들을 낳았을 때 마음의 상처가 더 깊어졌을 것은 사실입니다.
레오나르도는 자식을 낳는 것을 불행이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훗날 의붓동생 하나가 아들을 낳았다고 연락을 취했을 때, 놀랍게도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편지를 받고 네게 후계자가 생긴 것을 알았고 그 사건이 네게 큰 즐거움을 준 것을 이해한다. 나는 어느 정도 네게 타고난 분별력이 있다고 판단했는데, 그렇게 생각한 건 내게 선견지명이 없었음을 알게 해주는구나. 너는 부단히 경계하는 적을 자식으로 두게 된 것을 기뻐하지만 자식의 모든 에너지는 자유를 쟁취하는 데 있고 그 놈은 네가 죽은 후에야 그것을 얻게 될 것이다.”
레오나르도의 답장은 아버지 피에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그의 체험과 관련이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레오나르도의 성적 충동과 행위가 대단히 낮았고 일반 동물들의 수준보다 조금 높았던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여자의 음부를 확대해서 그린 점과 남자의 성기를 “길고, 두텁고, 무겁게” 그리거나 “짧고, 가늘며, 부드럽게” 그린 점으로 봐서 그가 성적 관심을 억제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태도는 성적 충동과 성적 행위가 낮은 사람의 태도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육체적 쾌락을 남용하는 것을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매독에 대한 위협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는 육욕이 진정한 사랑을 해치고 지성적인 활동을 저하시키며 실망과 비탄이 따르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그만의 생각이 아니라 당시의 보편적인 사고였습니다. 저명한 라틴어 학자 추기경 벰보는 1497년경에 라틴어로 ‘사랑하다’와 ‘괴롭다’ 혹은 ‘쓰라리다’는 말은 같은 단어 아마레amare에서 왔다면서 사랑함으로써 괴롭고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이런 견해를 우화적 드로잉으로 표현했습니다. 두 남자가 같은 몸에서 솟아오른 모습으로 한 사람은 늙은이로 한 손에는 불꽃을 다른 손에는 참나무 가지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잘생긴 젊은이는 한 손에 갈대를 들고 다른 손에는 금화를 들고 있으며 금화가 땅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고통과 쾌락을 상징합니다.
레오나르도는 쾌락과 고통에 관해 적었습니다.
“쾌락과 고통은 쌍둥이처럼 하나로 연결된 것으로 하나가 다른 하나 없이는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나 둘은 상반되기 때문에 서로가 등을 돌리고 있다. 네가 쾌락을 선택한다면 고난과 후회만 안겨주는 사람이 배후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쾌락과 고통이란 그러한 것들이며 ... 그것들은 서로가 상반되는 것처럼 등을 맞대고 있지만, 노고와 고통이 쾌락의 기초가 되며 허영과 외설적인 쾌락은 고통의 기초가 되므로 기초는 하나이며 동일한 몸에서 솟아오른다.
그러므로 여기서 쾌락은 상처를 입히는 독이 든 갈대를 오른손에 들고 있다. 토스카나에서는 갈대를 침대 아래 까는데, 사람들은 침대에서 허황된 꿈을 꾼다. 사람들의 인생은 많은 부분이 침대와 관련이 있다. 또한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환상을 좇아 환영적인 쾌락을 맛본다. 그래서 갈대는 이런 것들을 상징한다.”
레오나르도는 쾌락과 고통을 관련지었습니다. 그의 글을 읽노라면 아침에 침대에서 곧바로 못 일어나고 미적거리는 습관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는 잠이 깬 채 침대에 누워 꿈을 꾸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는 드로잉 하단에 “털이 든 매트리스나 누빈 매트리스에 누우면 새로워지지 않는다”고 적었습니다. 그는 혼자만의 쾌락을 추구한 것 같았습니다. 그가 “짝짓기 행위”의 추함을 비난한 것은, 이성간의 성적 관계를 뜻하며 극도의 불쾌감을 느끼고 섹스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런 의문들을 그는 적었습니다. “야수들이 자기들의 씨를 쾌락으로 심게 되는 동기는 무엇이며, 왜 암놈은 쾌락으로 씨를 받으려고 기다렸다가 고통 속에서 새끼를 낳는 것일까?”, “만약 연인이 자기가 함께 할 대상에 순응한다면 결과는 즐겁고 상쾌하며 만족하게 될 것이다. 연인이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과 하나가 될 때 평화를 발견하고 억압에서 자유로워지며 휴식을 맛보게 될 것이다.” “사랑의 대상이 무가치할 경우 연인은 자신을 기만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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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질투에 대한 두 비유>, 21-28.9cm.
레오나르도는 질투와 미덕을 관련지었습니다. “미덕이 생기는 순간 미덕은 질투를 생겨나게 한다. 질투와 미덕이 구분되는 것보다는 몸을 몸의 그림자로부터 구분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질투에 관해 이렇게 표현했다.
“그녀(질투)는 잘생긴 얼굴에 가면을 쓴다. 승리와 진실이 불쾌감이 되어 그녀의 눈은 종려와 올리브 나뭇가지에 의해 상처를 입고 귀는 월계수와 상록수 나뭇가지에 의해 상처를 입는다. 그녀로부터 오는 섬광은 그녀의 말이 사악함을 상징한다. 끊임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그녀는 수척해지고 주름지며 격렬한 뱀이 그녀의 심장을 갉아먹는다. 그녀는 화살을 위한 웅변이 있는 화살통을 갖고 있는데, 종종 웅변으로 상처를 입게 되며 … 그녀의 손에는 화병이 있고 그 속에는 전갈들, 두꺼비들, 그리고 그 밖의 독액을 분비하는 야수들이 숨어 있다.”
레오나르도가 질투를 두려워한 까닭은 질투는 고의적인 뜬소문을 무성케 해서 나쁜 평판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