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사리,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미술에서 기대하는 것”

 작품은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1472년 스무 살 때 도제생활을 마치고 마스터로서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해 그의 이름이 페루지노와 보티첼리의 이름과 나란히 성 누가 성당의 지출 명단에 올라 있었습니다. 성 누가 성당이 레오나르도를 후원하게 된 건 성모 마리아의 초상을 그린 후부터였습니다. 레오나르도가 마스터가 되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수련기간이 끝났다는 것뿐이지 여전히 베로키오의 조수로 그를 도왔습니다.

바사리는 레오나르도가 마스터가 된 후 처음 제작한 것을 아버지가 헐값에 팔았다고 적었고 이는 유명한 전설이 되었습니다. 피에로가 지방에 있을 때 소작인 한 사람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소작인은 자신이 무화과나무로 방패를 만들었다면서 피에로가 피렌체의 유명한 화가에게 장식을 의뢰해주면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피에로는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그 일을 레오나르도에게 시켰습니다. 레오나르도는 거친 나무방패를 다듬어 매끈하게 한 후 특별한 유약을 발라 광택을 내고 거기에 고르곤Gorgon(그리스 신화의 동물로 머리가 뱀이며 보는 사람을 돌로 변화시켰다는 세 자매 괴물)의 머리를 그려 넣었는데, 이는 적을 두렵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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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곰의 머리>, 7-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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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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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개 발톱 습작>, 14.1-10.7cm.


레오나르도는 고르곤을 그리기 위해 크고 작은 도마뱀, 귀뚜라미, 메뚜기, 박쥐, 곰, 용, 그리고 그 밖의 낯선 동물들을 드로잉하며 습작했습니다.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괴물을 만들기 위해 “검은 바위의 갈라진 틈으로부터 나와 크게 벌린 입에서 불을 토해내고 눈에서는 빛이 나며 코로부터 독 김이 방사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방패 장식을 완성한 그는 아버지를 모시고 의견을 들으려고 했습니다. 피에로는 아들의 작업장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놀라 뒤로 나자빠질 뻔했습니다. 자신이 마귀를 봤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레오나르도는 “방패는 이래야 합니다. 가지고 가세요”라고 했습니다. 바사리는 이 말에 덧붙여서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미술에서 기대하는 것입니다”라고 레오나르도가 말한 것으로 적었습니다. 피에로는 곧바로 장터로 가서 화살이 방패에 꽂힌 모습으로 장식된 것을 하나 사서 소작인에게 주고 아들이 장식한 방패를 몰래 피렌체 상인에게 1백 두카트를 받고 팔았습니다. 그 상인은 그것을 밀라노 공작에게 3백 두카트에 팔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바사리에 의해서만 전해오지만 사실을 기록한 것 같으며 방패는 현존하지 않습니다.

레오나르도는 『회화에 관한 논문』에서 화가는 환상적인 동물을 실재 요소들에서 구성해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용을 그릴 때는 “맹견이나 사냥개의 머리에 고양이의 눈, 소마기의 귀, 그레이하운드(몸이 길고 날쌘 사냥개)의 주둥이, 사자의 눈썹, 늙은 수탉의 볏, 거북이의 목”으로 할 것을 권했습니다. 이런 아이디어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고, 베로키오가 의전에 사용하는 투구에 장식한 적이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이를 글로써 분명히 한 것입니다. 그는 미술품이 단지 장식이서는 안 되고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영향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그린 것은 마치 고향의 동굴 앞에서 두려움과 욕망으로 보고 싶어 했던 것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예술이라는 미지의 동굴 속에 이런 것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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