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두 가지 감정이 불현듯 생겼는데, 두려움과 욕망이었다”



레오나르도는 “과거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많은 기록을 남겼지만, 자신의 과거에 관해서는 별로 기술하지 않았습니다. 서른 살가량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적기 시작했습니다. 노트북을 갖고 다니면서 바라본 것에 대한 설명, 대상에 대한 정밀한 계산,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한 계획 등을 수시로 필기했습니다.

그는 왼손잡이로 알려졌습니다. 피렌체 조각가이며 건축가인 라파엘로 다 몬텔루포는 자서전에서 미켈란젤로도 타고난 왼손잡이라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의 일대기를 쓴 콘디비와 바사리는 이 점을 언급하지 않았는데, 미켈란젤로가 오른손으로도 작업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레오나르도의 노트북에는 사소한 내용도 적혀 있는데 지출내역, 편지초안, 어떤 사람의 이름, 공리, 빌려봐야 할 책의 목록, 잊지 말아야 할 사항 등입니다. 그는 자신의 느낌을 직접적인 표현으로 적기도 했으며, 고백 형식으로 감정을 적기도 했는데, 이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드문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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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아르노 강과 언덕이 있는 풍경>, 19.5-28.6cm.

왼쪽 상단에 ‘결백한 성 마리아의 축제날인 1473년 8월 5일이란 날짜를 명기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날짜를 명기한 건 집안의 전통적 내력인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공증인이었기 때문에 꼼꼼하게 날짜를 기록하는 버릇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의 어린 시절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지만 어린 시절을 보낸 빈치의 언덕에서 내려다본 장면을 그린 드로잉이 몇 점 남아 있습니다. 그가 펜으로 <아르노 강과 언덕이 있는 풍경>을 그렸을 때는 스물한 살이었습니다. 이 드로잉에는 아카데믹한 요소가 있어 그의 고유한 양식이 생기기 전에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는데, 그에게는 특별한 드로잉입니다.

<아르노 강과 언덕이 있는 풍경>은 서양미술사에서 최초의 풍경화 드로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풍경화가 흔히 다루어졌지만, 서양에서는 배경으로만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더러 미술사학자들은 이 풍경화가 레오나르도의 상상력으로 그려졌다고 하지만 특별히 날짜를 기록한 것으로 봐서 베로키오의 작업장을 잠시 떠나 고향을 찾았을 때 그린 것 같습니다. 당시 견습생들이 잠시 여름휴가를 얻는 건 보통 있었던 일입니다.

이 드로잉 뒷면을 보면 하단에는 언덕 아래 돌로 된 아치가 있고, 하늘에는 남자 누드가 그려져 있습니다. 누드 왼쪽의 웃는 얼굴 위에는 ‘나는 안토니오의 집에 묵었는데 만족스럽다 jo. morando. dant. sono. chontento’고 적혀 있습니다. 안토니오는 의붓아버지로 레오나르도가 어머니와 한동안 지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드로잉은 그가 기분 좋은 상태에서 그린 것이며, 흘려 쓴 글씨에서도 기분이 매우 상쾌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안토니오는 할아버지의 이름이기도 해서 과연 레오나르도가 누구의 집에 묵었는지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1473년이면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수 년이 지났을 때입니다.

드로잉에 바위, 산, 강이 보이며 어린 시절을 보낸 이 풍경은 그가 마음속에 깊이 담아둔 정신의 휴식처였다. 그는 <동굴의 성모>, <성모자와 성 앤, 양>, <모나리자>의 배경에 이런 장면을 사용했습니다. 이 드로잉을 그릴 즈음에 그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격렬한 욕망과 함께 불안한 마음으로 자연이 창조한 다양하고도 낯선 풍부한 것들을 보려고 위에 매달린 바위를 지나 한참을 걸어서 커다란 동굴 입구에 당도하자 잠시 선 채로 놀라움에 휩싸였는데, 그것이 존재하리하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집중해서 보려고 왼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오른손을 눈 위에 올려 그늘을 만들어 안을 응시하면서 캄캄한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보려고 했다. 난 잠시 그러고 있었고 두 가지 감정이 불현듯 생겼는데, 두려움과 욕망이었다. 위협하는 동굴, 어두움에 대한 두려움과 놀랄 만한 것이 안에 있다면 그것을 보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가 더 이상 글을 남기지 않았으므로 두려움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는 피렌체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베로키오의 작업장에서 창조적인 작업을 했음이 틀림없을 텐데 현존하는 작품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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