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키오의 제자가 된 레오나르도

 

작품은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바사리는 세르 피에로가 어느 날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Andrea dell Veroccio(1435-88)에게로 가서 아들의 드로잉을 보여주었다는 이유로 베로키오를 피에로의 가까운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1465년경 피에로는 베로키오에게 오르 산 미첼레 외관의 벽감을 장식할 변호사들의 수호성인 도마를 청동으로 제작할 것을 의뢰했습니다. 베로키오는 훌륭한 작업장을 갖고 있었고 매사에 신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피에로가 어떤 우정을 나눴는지는 알 수 없지만, 피에로는 피렌체의 대가들 중에서 베로키오의 문하에 자신의 아들을 맡겼습니다.

베로키오는 매우 부지런한 사람으로 바사리는 그가 그칠 줄 모르게 작업했으며, 늘 손에 무엇인가를 쥐고 있어 “녹이 스는 걸 방지했다”고 적었습니다. 베로키오는 도나텔로Donatello(Donato di Niccolo, 1386?-1466)로부터 수학한 후에도 스승의 작업에 협력했으며, 도나텔로는 자신이 늙어 작업을 할 수 없을 때 구매자들을 젊은 베로키오에게 소개해주었습니다.

도나텔로는 15세기 유럽을 대표할 만한 조각가였으며, 알베르티, 브루넬레스키, 마사초 등과 우정을 나눴고, 1404-07년에 기베르티의 조수로 일했습니다. 스물세 살 때 피렌체 대성당을 위해 <다윗>을 제작했고, 후에도 여러 점의 <다윗>을 제작했습니다. 그가 제작한 <다윗> 가운데 가장 빼어난 건 코시모의 주문을 받아 1430년 청동으로 뜬 것으로 메디치 궁전 안뜰에 세워졌습니다.

베로키오는 1464년에 코시모 데 메디치의 묘비를 의뢰받아 제작했습니다. 이 중요한 작업이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어 그에게 일감이 쏟아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조각가와 금세공가일 뿐 아니라 화가이며 장식가임을 사람들에게 널리 광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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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그리스도와 성 도마>, 청동, 그리스도의 높이 230cm.

오르 산 미첼레의 동쪽 파사드 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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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목에 베어지는 세례 요한>, 1477-80, 쇠. 피렌체 대성당 박물관

베로키오는 레오나르도보다 열일곱 살 많아 레오나르도에겐 아저씨와도 같았습니다. 그는 조각가이자 화가이면서 쇠를 잘 다뤘고, 당시 이탈리아의 중요한 예술가들 가운데 하나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어렸을 적에 금세공을 배웠는데, 파올로 우첼로, 브루넬레스키, 기베르티, 기를란다요 모두 금세공을 배우면서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베로키오의 별명은 ‘진정한 눈 true eye’으로 날카로운 시각 때문에 붙여진 것이 아니라 젊었을 때 그 별명의 성직자 수하였기 때문에 얻게 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도나텔로에게서 수학했다고 했지만, 주요 재능은 금세공에 있었으며, 섬세한 장인적 기교가 뛰어난 것이 특징입니다. 개인적인 위대함으로 보면 도나텔로와 비교가 되지 않지만, 그는 새로운 세대의 이상을 매우 명료하게 표현한 예술가였습니다.




현존하는 베로키오의 쇠 작품은 <목이 베어지는 세례 요한>한 점 뿐입니다. 이 작품은 피렌체 세례당을 위해 제작되었고 현재 대성당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는 조각가로 더 유명했으며 청동을 다루는 데 탁월했지만 대리석과 테라코타 작품도 제작했다. 그가 1475년경에 제작한 <다윗>은 도나텔로의 것보다 더 풍치가 있지만 덜 사고적입니다. 도나텔로의 다윗은 평온한 데 비해 베로키오의 다윗은 이제 막 움직일 수 있는 인물처럼 보입니다. 베로키오를 화가로 보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는 것이 그가 그렸다고 믿어지는 작품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작업장은 당시 피렌체에서 가장 큰 작업장으로 많은 유명 화가들이 그의 작업장에서 일했습니다. 그의 작업장은 피렌체에서 가장 다양한 작품을 아주 많이 제작해내는 곳이었고, 제자들의 협력이 스승을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때마침 조각이 자연을 철저히 탐색하려는 경향을 보이던 때라서 회화와 조각을 결합시킨 작업이 더욱 촉진되었습니다.

그의 작업장에서는 온갖 작품을 제작해냈습니다. 그의 작업장은 오늘날 상점같이 아래층이 거리에 있어 상품을 진열하듯 행인들이 작품을 볼 수 있도록 전시했으며, 사람들이 아이와 함께 안으로 들어왔고, 개, 닭, 돼지들도 쉽게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바사리에 의하면 베로키오는 싼 것 비싼 것 가리지 않고 모두 주문받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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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 디 크레디의 <베로키오의 초상>, 1485.

베로키오는 오래 포즈를 위하는 데 힘이 들었는지 왼손을 오른손 위에 올려놓고 긴장한 모습이라 로렌초가 속히 초상화를 완성시켜 자신이 하다 만 작업에 임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로렌초 디 크레디가 1485년에 그린 베로키오의 초상화를 보면 사각형의 얼굴에 볼이 통통하고 강렬한 시선을 느낄 수 있으며, 넓은 코 아래 가는 입술에서는 감성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의 얼굴에서 부드러움을 느낄 수 없지만, 턱이 작고 여성적이라서 이 부분에서는 부드러움이 엿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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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얼굴을 4분의 3정도 왼쪽으로 향한 젊은 여인의 머리>, 32.4-27.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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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젊은 여인의 머리>, 미완성, 패널에 유채, 24.7-21cm.


레오나르도가 베로키오의 작업장에서 배우고 조수로 활동한 기간은 12, 13년이나 됩니다. 화가이면서 작가인 첸니노 첸니니는 13년의 기간이면 도제discepolo의 단계에서 수습기간을 마치고 제구실을 하는 장색garzone 단계를 거쳐 숙련공maestro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도제기간에 견습생은 첫 6년 동안 그림 그리는 데 사용하는 붓 만들기, 겉칠하기, 참피나무나 버드나무 패널에 캔버스를 잡아당겨 붙이기, 안료를 알아보고 준비하기 등을 배우게 되며 매일 안료를 섞어 원하는 색을 내는 일도 배웁니다. 이후 6년 동안은 채색법, 착색료로 장식하기, 금실로 천에 수놓기, 벽에 직접 그리기 등, 이 모든 일을 주말에도 휴일에도 쉬지 않고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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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두오모 대성당: 피렌체 대성당>

피렌체 공화국과 길드의 공동 작업으로 지어진 것으로 1292년에 착공하여 1446년에 완공되었습니다. 브루넬레스키는 1420년 8월에 돔의 건설에 착공하여 1436년에 완공했습니다. 돔 위의 제등은 1471년 베로키오에 의해 완공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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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디자인한 <피렌체 대성당의 돔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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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디자인한 <피렌체 대성당의 돔 모델>, 1420년경, 드로잉.

건축가이며 조각가인 브루넬레스키는 피렌체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였으며, 1420-36년에 대성당의 돔을 제작한 후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알베르티, 도나텔로, 마사초와 함께 르네상스 양식의 창시자였습니다. 1401-03년 피렌체의 세례당 문을 놓고 경연을 벌였지만, 기베르티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경연에서 진 브루넬레스키는 1412년경 산타 마리아 노벨라를 위해 십자가 처형을 나무로 제작하고 채색한 것 외에는 조각에서 손을 떼고 건축에만 전념했습니다. 그는 화가는 아니었지만, 회화에 관한 논문에서 원근법에 관해 언급했으며, 이는 선구적인 일이었습니다.



1467년 베로키오는 코시모 데 메디치의 묘비를 완성한 뒤 산 로렌초 성당에 장식했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거대한 크기의 구체를 청동으로 제작하여 피렌체 대성당 제등 위에 놓았습니다. 피렌체 대성당은 수세기에 걸쳐 건립되었는데,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1300년 이전에 산타 마리아 성당 부지에 건립하기 시작했다가 중단한 후 오랫동안 방치되었고, 조토가 종탑을 디자인했으며, 그 후 안드레아 피사노, 프란체스코 탈렌티, 기베르티,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작업해 완성했습니다.

브루넬레스키는 고대 이래 가장 큰 돔을 건물 위에 올려놓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무거운 지붕을 올려놓으려면 부축벽이나 이에 상응하는 힘을 지탱하게 하는 구조물이 필요한데 그런 것 없이 기하학적으로 디자인함으로써 건축에 크게 이바지한 것입니다. 1446년 브루넬레스키가 타계했을 때 돔은 세워졌지만 그 위에 장식물은 없었습니다. 대리석 제등을 지붕 위에 올려놓았지만, 그로써 브루넬레스키가 고안한 디자인이 모두 완성된 건 아니었습니다. 베로키오에게 주어진 작업은 이 제등 위에 구체와 십자가를 올려놓아 이 디자인을 완성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쇠로 제작했는데 폭이 6m에 높이 107m, 무게가 2톤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을 제등 위에 올려놓은 후에야 대성당은 비로소 완공되었습니다.

1471년 5월 27일 모든 피렌체인은 구체와 십자가를 높이 올려 제등 위에 세우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이튿날 오후 3시 팡파르가 울려 퍼졌고 역사학자들은 이 날을 기념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이 작업을 처음부터 마칠 때까지 지켜보면서 예술가이면서 공학가의 작품이 받는 영광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베로키오의 작업장에 들어가자마자 공학부터 배우게 되었습니다.

베로키오의 작업장에서 수학한 사람은 레오나르도 한 사람뿐이 아니었습니다. 페루지노, 로렌초 디 크레디, 레오나르도보다 예닐곱 살 많은 보티첼리를 비롯해 1450년을 전후해서 태어난 예술가들이 그로부터 수학했으며, 기를란다요와 루카 시뇨렐리도 그로부터 수학한 것 같습니다. 작가 우골리노 베리노는 1490년에 “베로키오의 제자들 거의 모두가 지금 이탈리아 도시들에서 활약하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베로키오의 작업장에 들어갔을 때 그곳은 피렌체 젊은 예술가들의 회합장소와도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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