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공화국
(작품은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14세기 말 이탈리아의 최강국은 베네치아 공화국Venetian Republic이었습니다. 지중해 패권을 둘러싸고 제노바와 격렬한 대립을 계속한 베네치아 공화국은 14세기 중엽에 숙적 제노바를 격파하고 유럽 제1의 해상세력을 구축했습니다. 공화국은 총독Doge에 의해서 통치되었으나, 대상인으로 이루어진 도시귀족의 세력이 강대했습니다. 이탈리아 도시들 가운데서 비교적 정치가 안정되고 후기르네상스에 있어 문화의 일대 중심지가 됩니다.
일찍이 11세기 초에 베네치아 상선은 아드리아해, 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하며 이 도시를 유럽의 상업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동방으로부터 융단, 향료, 노예 등이 매일 항구에 유입되었고, 그것들을 내린 배에 양모제품, 직물들이 실려 나갔습니다. 선주의 지혜, 선장의 담력, 외교관의 수완이 조화를 이루어 지중해 동부에 돌출한 삼각형의 반도인 발칸 반도Balkan Pen.와 소아시아의 시장은 베네치아의 수중에 들어갔고 각지에 무역진흥공관이 세워졌습니다.
15세기에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반도에서도 가장 번영하고 화려한 도시로 발전했습니다. 상인 귀족들의 꿈과 같은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대운하의 연안에 연립되어 독특한 매력을 풍기고 화사한 나선형의 둥근 기둥, 섬세하고 우아한 발코니, 나란히 줄지은 아름다운 창문들, 창문에 드리워진 레이스의 경쾌함, 세밀한 금속세공이 환상적 화려함을 나타내주었습니다. 이 속에는 비잔틴과 고딕, 극도로 세련된 두 양식이 완벽하게 융화되고 있었습니다. 내부의 화려함도 외관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실내에는 화려한 가구들이 놓여 있었으며, 벽은 밝고 경쾌한 색의 모자이크로 장식되었고, 태피스트리, 둥근 천장에는 프레스코, 벽에 걸린 그림들의 액자는 금으로 도금되어 빛에 의해 강렬한 색을 발했습니다. 대부분 베네치아의 저명한 예술가들 솜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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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1430?-1516)의 <풀밭의 성모>, 1500-05년경, 67-86cm.
조반니 벨리니는 베네치아 화파 최성기의 화가로 색채가 풍부한 정서적인 메시나의 화풍을 구사했으며, 풍경과 인물에 뛰어났습니다.
베네치아는 15세기 최대 미술전당들 중 하나였습니다. 이런 명성을 쌓는 데 가장 공헌을 한 이들은 벨레니 가의 작업장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작업장의 창시자인 화가 야코포 벨리니Jacopo Bellini(1400-70/71)는 두 아들, 젠틸레와 조반니와 함께 작업장을 운영했는데, 베네치아 화파의 시조인 그는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1431?-1506)의 장인이기도 했습니다. 만테냐는 파도바 화파의 화가이며 조각가 도나텔로의 영향을 받아 견고한 조형적 성격의 작품을 그렸으며 북 이탈리아 화파의 르네상스 양식을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의 문하에서 회화를 수학하면서 피렌체에서 작업한 적이 있는 야코포 벨리니는 각지를 편력하며 수업을 연마한 후 베네치아에 돌아와 공방을 차리고 아들들을 화가로 키웠습니다. 두 아들은 아버지와 더불어 당대에 가장 유명한 화가가 되었습니다.
베네치아의 인문주의는 피렌체만큼 일찍 발전하지는 못했고, 또한 피렌체만큼 학교와 아카데미가 많지 않았지만 열의에 있어서는 결코 뒤지지 않았으며, 15세기에는 문화와 예술에서 더욱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책을 소장하지 않은 귀족이 없었고, 어느 관저든 앞을 다투어 문인과 시인에게 문을 활짝 열어놓았습니다. 귀부인들은 신학자와 철학자들을 초대해 강의를 들었고, 학교는 서민자제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활판인쇄의 발전에 따라 문화보급의 폭이 넓어지고 일반 독자들이 고금의 명저들을 구하기가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15세기 후반의 베네치아는 인쇄출판의 최대 중심지가 되었고, 출판물은 인쇄의 선명도, 지질의 우수함, 아름다운 활자체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15세기 말 베네치아에서 12,835권의 서적이 간행되었는데, 대부분이 알드 마누티오의 손에 의해서 출판되었습니다. 1449년에 태어난 이 천재 인쇄출판업자는 로마에서 성장하고 라틴 문학에 정통했습니다. 그는 로마를 떠나 페라라에 살면서 그리스 고전의 번역에 치중했고 플라톤, 키케로에 관해 강연함으로써 박식함을 피력하고 교육에 열을 올려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리스 고전의 염가판을 출판해 많은 사람들이 애독하는 것이 마누티오의 꿈이었으나 값만 싸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원전의 여러 사본에 대한 비교연구가 매우 큰 작업이었고 판매시장도 개척해야 했습니다. 그가 베네치아로 이주한 건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는 베네치아의 고전학자에게 원전에 대한 비판과 주석을 청탁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사업은 성공했고 사후 아들에게 유업으로 계승하게 했습니다. 이처럼 활판인쇄가 신속하고 광범하게 위력을 발휘한 도시는 메디치 치하의 피렌체뿐이었습니다. 15세기 유럽에서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 피렌체와 대항할 수 있는 도시는 베네치아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