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개성의 마네의 모델 베르테 모리소


(작품은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마네의 <휴식 Repose (Berthe Morisot)>, 1869-70, 유화, 148-111cm.

베르테는 마네의 화실을 방문하면 늘 자주색 소파에 앉았는데, 어느 날 비스듬히 기대앉은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이 그림에 나타난 베르테의 포즈를 보면 마네의 주문에 의해서 포즈를 취한 것이라기보다는 스스로 그러한 포즈를 취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베르테는 왼발을 뒤로 하고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며 양팔을 날개처럼 벌리고 아주 편한 자세를 취했는데, 이런 자세를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현대인답게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에게 편한 자세를 취했으므로 모더니즘이 시작되었음을 시위라도 하는 듯이 보입니다.



아내 수잔을 빼고는 마네의 그림에 나타난 여인들은 모두 날씬했습니다. 마네는 베르테를 모델로 여러 점 그렸으며 <발코니>에 이어 1869-70년에 그린 두 번째 그림은 <휴식 Repose (Berthe Morisot)>이란 제목을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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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에바 곤잘레스의 초상 Portrait d'Eva Gonzales>, 1869-70, 유화, 191-133cm.

에바는 1863년 이후 프랑스 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한 소설가 엠마누엘 곤잘레스의 딸입니다. 이 초상화는 1870년 3월 12일 살롱 출품 마감 날 직전에 완성되었습니다. 마네는 후에 이 초상화를 에바에게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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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곤잘레스의 <소년 군인 Enfant de Troupe>, 1870, 유화, 130-97.5cm.


이 그림을 그릴 때 마네는 <에바 곤잘레스의 초상 Portrait d'Eva Gonzales>도 그렸습니다. 베르테의 말에 의하면 마네가 <에바 곤잘레스의 초상>을 그릴 때 무려 40여 차례나 포즈를 취하게 했지만, 잘 그려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마네는 1869년 2월 처음으로 에바를 제자로 받아들여 가르쳤으며, 그녀는 인물화를 주로 그리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베르테는 에바와는 달리 마네의 심중을 헤아려 스스로 포즈를 취하곤 했으므로 편안한 마음으로 작업하게 해주는 모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마네에게서 회화를 배우지는 않았는데 어느 정도 회화에 자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제자가 되어 배울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베르테는 마네와 마찬가지로 상류층 집안 출신으로 1841년 1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고 성장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프랑스 중심의 행정구역 세르의 장관이었거나 고위공직자로 알려졌습니다. 그녀는 셋째 딸로 3살 많은 언니 이브와 2살 많은 에드마가 있습니다. 어머니 코넬리는 매우 지성적이며 위트가 넘쳤는데 베르테는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세 자매는 1858년에 드로잉 레슨을 받았는데 피아노 레슨처럼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 받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에 열두 시간이나 받는 맹훈련이었습니다.


베르테는 1860년 에드마와 함께 카미유 코로에게 수학했는데 이때 코로는 예순네 살이었습니다. 코로는 자매에게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코로는 풍경화가로 유명했으며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풍경을 그린 그림들만을 출품해왔는데, 1869년 살롱에는 인물화 <방해받은 독서>를 예외적으로 출품했습니다. 베르테 자매가 코로로부터 회화를 수학한 기간은 6년이나 되었습니다. 코로는 자매에게 야외에 나가서 스케치하도록 가르쳤으며 또 자신의 작품들을 모사하게도 했습니다. 모사에 있어서는 에드마가 베르테보다 뛰어났지만, 에드마는 아마추어 화가로 남았고 모사보다는 창작 의욕을 가진 베르테는 유명한 화가가 되었습니다. 베르테는 자기가 모사한 코로의 작품을 모두 없애고 한 점만 남겨두었는데, 마네가 그러했듯이 창작 의욕이 넘치는 그녀도 모사를 통한 코로의 영향에서 스스로 벗어났습니다.


<휴식>에 나타난 베르테의 얼굴에서 강렬한 개성을 보이며, 그녀 스스로 자신만만한 화가임을 시위하려는 듯합니다. 마네의 모델들이 단순히 그의 작품 속의 대상으로 포즈를 취한 데 비해 베르테는 마네의 예술에 자신을 반영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 것과 다른 모델들이 각 작품에서 변신했다면 베르테는 늘 개성이 강한 그녀 본래 모습이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합니다. <발코니>에서 그녀는 세 사람 가운데 가장 뚜렷하게 자신의 모습을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실제의 모습이었습니다. 베르테는 르누아르와 마네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마네에게 충고를 한 적도 있는데 자연을 신선한 눈으로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녀가 코로에게서 배운 점이기도 합니다.


<휴식>은 1873년의 살롱을 통해 소개되었는데, 훌륭한 가문의 규수가 거만한 자세를 취한 것이 알려지는 것을 꺼렸는지 살롱 카탈로그에는 이 작품에 관한 언급이 없습니다. <발코니>에서 그녀는 이목구비가 분명하게 나타났지만, 여기에서는 얼굴이 부드럽게 보입니다. 마네가 색을 느슨하게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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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베르테 모리소 Berthe Morisot>, 1872, 유화, 55-38cm.

검정색 의상에 모자를 쓴 배르테의 얼굴을 색으로 이등분하면서 마네는 밝고 어두운 색을 병렬했는데, 조명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베르테의 개성이 잘 나타난 이 초상화는 마네의 순수한 미학을 대변할 만합니다. 긴급하게 사용한 붓질이 베르테의 표정을 재빨리 포착했습니다. 피부색과 눈동자의 검정색 대비는 배경의 상아색과 모자, 스카프, 의상의 검정색과 증폭되는 대비를 이루면서 우아한 조화를 이룹니다. 색을 평편하게 사용한 방법은 일본화의 영향이었고, 검정색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건 스페인 회화의 영향입니다.


120-1 마네의 <부채를 든 베르테 모리소 Berthe Morisot a L'Eventail>, 1872, 유화, 50-45cm.

마네는 1872년 7-9월 사이에 이 작품을 포함하여 베르테의 초상화를 네 점 그렸습니다. 그해 5월 살롱에 출품할 만한 작품이 없어 서운해 하던 마네는 일종의 슬럼프에 빠졌던 듯합니다. 그래서 영감이 떠오르는 대로 자유롭고 즉흥적으로 그리는 그림을 시도했습니다. 이때 새로 장만한 화실로 종종 방문하는 베르테를 즉흥적으로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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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베르테 모리소 Berthe Morisot>, 1874, 수채화, 20.9-16.8cm.




마네는 1872년에 베르테의 초상을 <베르테 모리소 Berthe Morisot>란 제목으로 다시 그렸습니다. 그녀가 마드리드를 여행하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관람자를 향해 똑바로 바라보는 베르테의 얼굴에서 우리는 그녀가 어떤 내면적인 즐거움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네는 베르테의 개성적 매력과 지성, 화가로서의 재능, 덜 다듬어진 아름다움 등을 유감없이 묘사해냈습니다.

폴 발레리가 이 작품을 극찬했습니다.


나는 1872년에 그린 베르테 모리소의 초상을 마네 예술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 무엇보다도 나는 검정색의 완전한 어둠에 주목하고자 한다. 상을 당했을 때 쓰는 모자와 턱끈의 검정색은 마네만이 해낼 수 있는 효과로 날 사로잡는다. … 검정색의 힘과 단순한 배경, 장밋빛이 감도는 백색의 깨끗한 피부, 가히 ‘현대적’이며 ‘신선한’ 모자의 독특한 실루엣. 즉 인물의 외양을 감싸는 모자와 끈, 리본의 형태 … 어딘가를 응시하는 시선과 그윽한 눈빛의 커다란 눈망울을 지닌 이 모델은 일종의 ‘부재의 존재’를 웅변한다.


이 시기에 마네의 동생 외젠과 베르테 사이에 혼삿말이 오갔는데, 베르테는 외젠을 가리켜 사분의 삼은 미친놈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베르테는 1874년 12월 마네 가족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마네가 그녀를 모델로 그린 그림은 모두 11점인데 자신이 5점을 보관하고 2점을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베르테는 마네가 죽은 후 1점을 구입하여 3점을 갖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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