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치료사는 아이를 존중하고 따뜻하게 대응해야 한다



아이가 미술 재료를 이용해 무엇인가 그리거나 만들기 시작하면,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좋습니다.

즉, 아이가 조용히 작업한다면 굳이 말참견하거나 간섭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반면 아이가 먼저 말을 꺼낸다면 적극적으로 경청해주어야 합니다.


미술치료사로서 해야 할 일은 아이가 재료를 가지고 미술 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레 표현하는 반응을 존중해주고, 그때그때 민감하고 따뜻하게 대응해주는 것입니다.

『아동 미술치료 Child Art Therapy』(2010, 출판사 知와 사랑)의 저자 주디스 아론 루빈은 40여 년 동안 미술치료 분야에서 일해 오면서 깨달은 사실이 어떤 아이들은 하나 이상의 표현 통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아이들은 동시에 두 통로 이상을 통해 감정이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한 번에 하나의 통로를 통해서만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아이도 있습니다.

이러한 선천적인 경향은 고칠 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디스 아론 루빈은 이것이 타고난 신경 배선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단일 통로를 타고난 예술가에게 누군가 질문을 던져 작업을 방해하면, 그들은 답을 하기 위해 작업을 멈추거나 질문을 듣지 못한 채 작업에만 열중할 것입니다.

반대로 점토 반죽을 주무르고 두드리다 보면 혀가 풀어져 말이 더 많아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따라서 창의적인 미술 활동이 자연스러운 언어 표현을 촉진하느냐 저해하느냐는 아이들이 타고난 성향에 따라서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이든 비간섭적인 태도로 아이의 활동에 흥미를 보여주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가 미술 활동을 하는 동안 꼭 질문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으면, 아이에게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는지 먼저 물어보아야 합니다.

아이가 작품을 만들면서 자연스레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아이가 이끄는 대로 따르는 것이 항상 가장 좋습니다.

이는 치료사가 던지는 질문이나 진술이 아이에게 가치 판단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치료사의 말이 최종 결과물에 영향을 끼쳐, 아이는 치료사가 중간에 개입하지 않았을 때와 전혀 다른 작품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언어 외에도 다양한 수단으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합니다.

아이가 치료사를 한 번 흘긋 보는 단순한 행동에도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치료사에게 허락이나 승인을 구하는 것일 수도, 치료사를 탓하거나 벌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치료사와 얼마나 거리를 두고 자리하는지, 어떤 자세를 취하는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동작을 하는지도 마찬가지로 많은 이야기를 해줍니다.


아이가 성인인 치료사에게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치료사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관찰하면, 그 아이의 일반적인 태도와 기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치료실에 처음 들어섰을 때부터 당당하고 자신 있는 태도로 도움을 청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주눅 들거나 겁에 질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소심하건, 친화적이건, 억압적이건, 무기력하건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소망과 근심을 미술작품에 투사하듯이, 자신들과 관련된 중요인물들에 대한 감정과 기대를 치료사에게 투사합니다.

따라서 미술치료사는 아이가 치료사를 신뢰하는지 아니면 의심쩍어하는지, 위축된 모습을 보이는지 아니면 외향적이고 활달한 모습을 보이는지, 편안해하는지 아니면 두려워하는지, 적대적인지 아니면 우호적인지, 의존적인지 아니면 독립적인지 잘 관찰해야 합니다.

또한 미술치료를 받으면서 그러한 태도가 변화하는지도 주목해야 합니다.


아이가 창의적인 과업을 앞에 두고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를 관찰하면, 새롭고 모호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아이가 일반적으로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미술 재료로 무엇을 할지 결정하라고 청했을 때, 아이들이 보이는 반응은 매우 다양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매우 충동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아이가 어떤 재료를 고르느냐 못지않게, 재료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에도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이 미술 도구와 재료에 보이는 반응 또한 매우 다양합니다.

아이들은 열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신중한 반응을 보이기도, 때로는 접근-회피approach-avoidance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 중 접근-회피 반응을 자주 유발하는 재료로 손가락 그림물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촉각형feeler’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촉각형 아이들은 갓난아이들이 감각기관을 통해 학습하듯 만지거나, 맛보거나, 냄새 맡는 등의 행동을 주로 합니다.

그런 아이들은 재료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집니다.

재료를 누가, 어디에서 샀는지 낱낱이 캐묻는 행동은 호기심과 감각적 욕구에서 비롯됩니다.

어떤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재료들을 몽땅 제 앞에 가져다 놓습니다.

그러한 행동은 무엇인가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불안간과 충동 조절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개중에는 심지어 미술 재료를 집으로 가져가도 되는지 묻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의 욕구는 식을 줄 모릅니다.


일단 재료를 선택한 후 아이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합니다.

점토를 손으로 꾹꾹 쥐어짜는지, 쾅쾅 내리치는지, 부드럽게 만지는지, 꼬집는지, 가볍게 토닥거리는지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줍니다.

아이가 작은 점토 덩어리를 힘차게 쥐어짠다든가, 크레용을 꾹 눌러 부러뜨리는 등의 행동에서 공격적인 충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재료와 친숙해지는 과정은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주위를 빙빙 돌며 탐색하다가, 서로를 응시하고, 한동안 직접적인 접촉 없이 관찰만을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시험 삼아 손을 뻗어 살짝 만져봅니다.

모험적인 시도의 결과는 두 가지일 수 있습니다.

서로 더 멀어지거나 가까워집니다.

또 어떤 아이들은 첫 만남을 다분히 충동적인 방식으로 시작하기도 합니다.

아무 망설임 없이 자신에게 익숙한 재료나, 새로운 재료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재료와의 첫 접촉은 아이마다 다양합니다.

재료를 무심코 집든, 신중하게 고르든, 충동적으로 잡아들든,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하든 그 행동은 아이의 내면 상태에 대해 많은 정보를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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