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도시설계가, 건축가, 물리학자, 의학자, 화가 2
(작품은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은필, 목탄, 초크, 펜과 잉크 등을 사용하여 드로잉하면서 물질적, 정신적 요소를 두루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자연에 관심이 많은 그는 풍경을 드로잉 했으며, 인물을 그릴 때에도 나무, 강, 바위, 산, 구름, 바다 등을 삽입해 자연을 회화적으로 중요하게 다뤘습니다. 그에게 있어 회화의 확실성은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첫째, 사물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눈에 의존하고, 둘째, 눈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은 실제 척도를 따라 판단을 검증하며, 셋째, 기하의 원리를 이용하는 것 등입니다. 시를 옹호하는 사람과의 논쟁에서 그는 “회화가 자연의 모습을 시보다 솔직하게 나타내기 때문에 회화가 시보다 더 낫다”고 주장했으며, 회화와 시의 관계를 실재와 그림자에 비유했습니다. 또 회화가 조각보다 우수함을 역설하면서 조각은 색채나 대기의 원근을 나타낼 수 없으며 발광체나 투명체를 비롯하여 구름과 폭풍우, 그 밖의 많은 것들을 묘사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회화를 일종의 과학으로 보고, 예술적 모방은 과학적 행위이지만 단순히 기계적 행위로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으며, 이론에 근거하는 실천을 역설했습니다.
“학문적 바탕이 없이 실제 작업에만 힘을 쏟는 사람들은 키나 나침반을 갖지 않고 바다로 나가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확실히 알지 못하는 선원들과 같다. 실천은 늘 확고한 이론에 근거해야 한다.”
레오나르도는 뛰어난 공학가였습니다. 그가 발명한 것들을 보면 나사를 자르는 기계와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 롤러-베어링 브레이크, 최초의 연발총, 톱니바퀴가 부착된 기어로 끌어올리는 절구, 여러 개의 벨트는 사용하는 방법과 세 가지 속력을 내는 변속기어, 그리고 다양한 크기의 나사를 조일 수 있는 조절 가능한 렌치 등 그 밖에도 그가 고안한 기계들이 아주 많습니다. 물속을 탐험하는 계획도 세웠지만 그것에 대해 설명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증기기관차에 관해서도 연구했으며, 낙하산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제작방법을 기록했습니다. 생애의 절반을 인간이 날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연구한 그는 새를 여러 면에서 인간보다 우수한 종으로 생각했습니다. 새 날개와 꼬리의 기능에 관해 구체적으로 연구하면서 상승하고 하강하며 방향을 전환시키는 비행물체를 고안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과학의 모든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고, 기하학적 형상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그는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은 기하에 대한 그의 관점을 파악하면서 감상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천체에 관해서도 관심이 많은 그는 “태양은 움직이지 않고 ...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있지도 않다”, “달에는 겨울과 여름만 있다”고 적기도 했습니다. 그는 지구가 둥글다고 했으며, 물로 덮여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또한 땅속에는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다면서 이를 인체의 혈관에 비유했습니다. 고지에서 발견되는 조개껍질과 물고기 뼈 화석을 보고 물이 한때 고지에까지 찼었다고 추측했는데, 보키치오 역시 1338년 『필로코포 Filocopo』에서 이러한 점을 지적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사하라 사막도 한때 바닷물에 잠겨 있었던 것으로 보았으며 성서가 말하는 대홍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이는 당시 매우 불경스러운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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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수역학 장치>, 15-10.5cm.
운동과 중량에 관해 100페이지 분량으로 적었고, 또한 그만큼의 분량으로 열, 음향, 광학, 색채, 수리학, 자석에 관해 적었습니다. 그는 “기계학은 수학적 과학의 천국이며 이를 통해 사람들은 수학의 열매를 맛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사물에 대한 관찰력이 대단했으며 전화의 원리, 즉 소리의 전달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배를 멈추고서 가늘고 긴 튜브를 바닷물 속에 담그고 튜브 끝을 귀에 대면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배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음악을 통해 소리의 파장을 발견한 그는 간단한 기구 튜브로도 소리를 전달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소리보다는 시각과 빛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눈의 역할에 매우 경이로워하면서 “눈은 우주 전체의 이미지가 아주 작은 공간에 들어 있음을 믿는다”고 적었고, 정신은 아주 오래된 이미지를 상기해내는 힘이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눈을 카메라 렌즈의 원리로 이해하여 카메라와 눈 모두 빛의 작용으로 이미지를 피라미드 모양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았으며, 햇빛을 분석하여 무지개로 나타나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이탈리아의 건축가이며 인문주의자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1404-72)와 마찬가지로 그도 4세기 후 미셀 세브루가 명료하게 밝혀내기 전에 이미 보색complementary color에 관한 관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물에 관한 논문을 수없이 썼습니다. 물의 운동은 늘 그의 뇌리 속에 있었습니다. 2천1백 년 전 탈레스가 말한 것처럼 그도 “물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탈레스와 마찬가지로 물은 그에게 만물의 근원이었습니다. 그는 밀라노에서 운하를 디자인하고 건립하여 배들이 지름길로 물자를 운반할 수 있게 했으며, 물에 대한 집중적 연구를 통해 일상생활에 편리함을 주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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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베들레헴의 별꽃, 풀, 미나리아제비, 아네모네, 또 다른 종자에 관한 식물학상의 연구>, 1505-07년경, 19.6-15.8cm.
자연을 관찰한 그는 자연사에도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식물의 잎이 줄기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고 자연법칙을 정립하기 시작했고, 나이테로 나무의 나이를 아는 방법도 알아냈습니다. 그렇지만 당대의 망상을 전부 버리지는 못했는데, 어느 특정한 동물이 눈앞에 있거나 그 동물을 만질 경우 낫는 병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지만 인체를 직접 해부하며 인간의 내부와 각 부분들의 작용을 알게 되면서부터 미신적인 생각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서른 구 이상의 시신을 해부했으며, 한 권의 책으로 엮기 위해 수백 점의 드로잉과 글을 기록했습니다. 자궁, 심장, 폐, 두개골, 힘줄, 창자, 안구, 뼈대, 두뇌, 그리고 여인의 하복부 등을 직접 보고 드로잉 했습니다. 자궁을 과학적으로 재현한 건 그가 처음이며, 해부학에 관한 상세한 드로잉과 글은 전에 없던 것들입니다. 오늘날 空洞(공동)으로 알려진, 광대뼈에 난 구멍을 드로잉으로 보여준 것도 그가 처음입니다. 또한 죽은 황소의 심장에 액체 왁스를 넣어 심실을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인체에 관한 주요 논문들은 프랑스 군대가 밀라노를 침입했을 때 사라졌지만, 오늘날 그는 위대한 과학자로 기억됩니다. 과학에 대한 관심과 성과를 알 때 비로소 그의 진면목을 알게 됩니다. 이는 미켈란젤로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점으로 두 사람을 동일한 관점에서 비교하는 건 공정치 못합니다. 두 사람의 진가는 각기 상응하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에만 드러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