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들 가운데 왜 마네와 모네의 작품만 다루느냐는 불평을 하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불평이라기보다는 미술을 더욱 폭넓게 공부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하여 중간 중간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에 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오늘날 한 대의 컴퓨터로 두 가지 이상의 작업을 동시에 처리하거나, 두 가지 이상의 프로그램들을 동시에 실행시키는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이 유행입니다. 블로거들은 두 가지 이상을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따라서 미술을 두 가지 갈래로 나눠 진행시켜도 블로거들이 충분히 따라 오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과학과 미켈란젤로의 영혼』(미술문화)이란 제목의 책을 쓴 바 있어 그 자료에 새로운 자료를 보태어 연재하겠습니다.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작품은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과학과 영혼을 추구한 두 거장: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
Leonardo da Vinci(1452-1519) and Michelangelo Buonarroti(1475-1519)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는 동시대인이지만, 레오나르도가 미켈란젤로보다 23살이 많아 아버지뻘이었습니다. 집안이 좋은 미켈란젤로는 메디치가의 재력과 정치력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한 반면 레오나르도는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이 없어 이탈리아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마침내 말년에는 프랑스로 가 그곳에 뼈를 묻습니다. 그의 무덤이 존재하지 않아 그의 말년이 불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모두 르네상스가 낳은 천재들입니다. 더러 사람들은 하늘이 한 세기마다 천재를 내보낸다고 말하지만, 거의 6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버금가는 천재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간략하게 두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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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자화상>, 연대미상, 33.3-21.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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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rdo da Vinci(1452-1519)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자연을 관찰하는 데 있어 명료하고 분석적 시각을 가진 레오나르도는 화가의 범주를 넘어선 진정한 르네상스의 사람이었습니다.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1435-88)의 문하에서 수학한 뒤 레오나르도는 화가로서 명성을 떨쳤지만, 이후 밀라노 통치자의 군사 전문 공학가가 되어 비행기, 요새, 수로 등 과학을 응용한 여러 고안에 전념했습니다. 또한 식물, 새, 구름과 물의 효과를 연구했으며, 이론을 통해 회화의 위상을 높이며 미학에도 일가견을 보여주었습니다. 서른 구 이상의 시신을 해부하여 수백 점의 드로잉과 글을 남겼는데, 그의 인체해부도는 현재도 경탄할 정도로 정교합니다. 피렌체와 밀라노를 오가며 파란만장한 삶을 산 레오나르도는 이국의 땅 프랑스에서 타계하여 그곳에 묻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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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코피노 델 콘테의 <미켈란젤로의 초상>, 1535년 즉 60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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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angelo Buonarroti(1475-1519)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레오나르도와 더불어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미켈란젤로는 도메니코 기를란다요Fomenico Ghirlandaio(1449-94)에게 수학하고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1266?-1337)와 회화에서 원근법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린 최초의 화가이면서 요절한 마사초Massaccio(1401-28)의 작품을 드로잉하면서 그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메디치 정원의 고대 조각품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로마 피에타>와 <다윗>을 제작함으로써 일찍이 최고 조각가의 반열에 올랐으며,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로 당대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이후 율리우스 2세의 무덤을 비롯하여 다수의 조각품을 제작하고,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위시한 많은 건축물들에 자신의 재능을 아로새겼습니다. 동시대 사람들에게 ‘신과 같은 미켈란젤로’라 불린 그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구원을 위해 정신에 내재한 형상을 구현하는 작업에 힘썼습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지속된 르네상스는 중세의 종말을 알리고 근대로 나아가게 하는 완충기였습니다. 프랑스어 르네상스Renaissance는 이탈리아어의 rina scenza, rinascimento에서 비롯했습니다. 고대의 그리스 문화와 로마 문화를 이상으로 하여 이를 부흥시킴으로써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려는 운동인 르네상스의 범위는 사상, 문학, 미술, 건축 등 다방면에 걸친 것이었습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곧 프랑스, 독일, 영국 등 북유럽 지역에 전파되어 각각 특색이 있는 문화를 형성했으며 근대 유럽문화 태동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르네상스에서 인문학의 발전으로 중세와의 단절이 무리 없이 이뤄졌고, 예술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인문학이 가능했던 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세 시인 두란테 델 알리기에리Durante degli Alighieri Dante(1265-1321, 두란테의 약칭이 단테),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1304-74), 조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1313-75)가 일찍이 고전에 대한 이해에 앞장서고 인간의 지식 전반에 걸친 성찰의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단테가 1307년부터 쓰기 시작하여 1321년에 완성한 장편 서사시 『신곡 La Divina Commedia』은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3부로 이뤄졌는데, 단테 자신의 영혼의 성장과정을 나타낸 것입니다. 망명 이후 심각한 정치적 , 윤리적 , 종교적 문제로 고민했던 그가 자신의 양심과 영혼 속에서 그 해결방법을 찾아내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교황청에 있으며 연애시를 쓰기 시작한 페트라르카는 성 아우구스티누스Saint Aurelius Augustinus(354-430)와의 대화형식으로 『나의 비밀』을 집필했으며, 서정시 「칸초니에레 Canzoniere」로 가장 대표적인 정형시인 소네트sonnet의 극치를 보여주었습니다. 보카치오가 쓴 100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것으로 ‘10일간의 이야기’로 알려진 『데카메론 Decameron』(1349-51)은 근대 소설의 선구자로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대는 인문학의 발달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과학과 예술이 뒷받침되어야만 합니다. 미술에 있어 르네상스는 과학의 정신을 가진 레오나르도와 순수예술론을 가진 미켈란젤로의 등장으로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