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정원의 여인들 Femmes au Jardin>


 

(작품은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1866년 모네는 빚쟁이들을 피해 파리 근교 빌 다브레이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아르망 고티에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을 느낍니다. 시골에 있기로 결정했습니다. 현재 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1866. 5. 22)

그는 커다란 그림을 야외에서 직접 그리기 위해 정원의 한 부분을 깊게 팠습니다. 캔버스를 지면 아래로 내려야 윗부분을 그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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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정원의 여인들 Femmes au Jardin>, 1866-67, 유화, 255-20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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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정원의 여인들 Femmes au Jardin>의 부분


모네는 다시 옹플뢰르로 거처를 옮겼는데 이번에도 빚쟁이들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돈이 떨어지자 그는 바지유에게 편지를 보내 그가 사용했던 캔버스를 보내달라고 부탁해서 바지유가 실패한 캔버스를 긁어내어 다시 사용했습니다. 모네는 옹플뢰르 화실에서 <정원의 여인들 Femmes au Jardin>을 완성시켰습니다. 이것은 시간을 많이 요하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리다 만 이것을 옹플뢰르로 옮긴 후 그해 여름과 겨울 한동안 그곳에서 지냈습니다.



이 작품의 제작 동기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바지유가 자기 여동생들을 찍은 사진을 모네에게 보여주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행하는 의상들을 소개하는 잡지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정원에 있는 여인들은 모두 카미유를 변신시켜 구성한 것입니다. 모네는 카미유를 따로따로 그린 후 그것들을 하나로 구성하여 여러 여인이 함께 정원에 있는 것인 양 보이게 연출했습니다. <정원의 여인들>은 꿈의 장면 또는 환상의 장면으로 나타났는데, 꽃이 있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있으며 햇빛이 한껏 쏟아지는 정원은 시인의 정원처럼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그해 봄과 여름 그는 꽃이 만개한 정원을 <정원 Flower Garden>이란 제목으로 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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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정원 Flower Garden>



<정원의 여인들>을 그릴 때 쿠르베가 방문했는데 해가 지자 그리기를 중단하는 모네에게 왜 계속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쿠르베는 모네가 같은 시간에만 그리는 것을 기이하게 여겼는데 이런 점이 쿠르베와 모네의 본질적으로 다른 미학이었습니다. 모네는 대상 하나하나에 대한 사실주의 묘사를 중요하게 여긴 것이 아니라 빛이 시시각각 대상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빛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결국 그로 하여금 인상주의 회화를 창조하게 한 것입니다.


<정원의 여인들>과 <풀밭에서의 오찬>은 빛에 대한 세심한 관찰에 의한 것들입니다. <정원의 여인들>에서 빛을 캔버스 대각선으로 구성하면서 카미유의 점박이 드레스를 관통하도록 했으며, 작은 과수 아래 앉아 있는 또 다른 카미유의 얼굴을 파라솔 때문에 빛에 가려진 모습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는 길을 양분하여 빛이 닿는 곳은 장밋빛 핑크색으로 묘사하고 그늘진 곳은 붉은빛이 감도는 보라색으로 묘사했습니다. 왼쪽에 서 있는 두 사람을 자세히 보면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빛에 의해 의상에 다른 색조가 있음을 봅니다. 그는 나뭇잎을 빛과의 상관관계에 따라 어두운 푸른색과 금빛 푸른색으로 달리 묘사했습니다. 그가 과거에 그린 그림들과는 달리 이 그림에는 빛의 역할이 현저하게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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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아놀드 저택의 갤러리; 중앙에 모네의 <옹플뢰르의 항구 Le Port de Honfleur>가 걸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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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당시의 옹플뢰르의 바보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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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옹플뢰르의 바보유 가껻 de la Bavolle, Honfleur>, 1866, 유화, 55.9-6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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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옹플뢰르의 바보유 가껻 de la Bavolle, Honfleur>, 1866, 유화, 55.9-61cm.


모네는 <정원의 여인들>과 <옹플뢰르의 항구 Le Port de Honfleur>를 1867년 살롱에 출품했지만 모두 낙선했습니다. <옹플뢰르의 항구>는 고기잡이배들이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바다 풍경을 그린 것으로 그가 그린 옹플뢰르 동네의 장면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1년이 지난 후 에밀 졸라가 <정원의 여인들>에 대한 기억을 상기하여 평했습니다.

밝은 색 여름 의상을 한 여인들이 정원 산책로를 거닐며 꽃을 꺾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여인들의 흰색 드레스 위로 곧장 내리꽂히는 햇살이 화사함을 더하여 준다. 나무 한 그루에서 뻗어 나온 옅은 그림자가 마치 널찍한 회색 모포인 양 오솔길과 여인들의 드레스에까지 침투해 있다. 이보다 더 기묘한 효과가 있을까?


1867년 1월 파리로 돌아온 모네는 비스콩티 가 20번지에서 르누아르와 함께 기거하고 있는 바지유의 화실에 합류했습니다. 르누아르도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였으므로 바지유의 신세를 지고 있었는데 모네까지 추가된 것입니다.


모네는 살롱에 낙선한 두 점을 개인전을 열어서라도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뜻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1855년 만국박람회 때 쿠르베가 자비로 지은 별관을 세놓았으므로 돈만 있다면 언제든지 그곳에서 개인전을 열 수 있지만, 이는 돈이 많은 화가에게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정원의 여인들>을 바지유가 2천 5백 프랑에 구입했습다. 그는 작품의 값으로 모네에게 매달 50프랑을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세 사람이 한 곳에 살게 되자 자연히 함께 작업하는 일이 잦았으므로 작품에서 유사한 점이나 동일한 주제들이 발견되었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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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유의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초상 Portrait of Auguste Renoir>, 1867, 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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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의 <왜가리를 그리고 있는 프레데리크 바지유 Frederic Bazille Peigmant Le Heron>, 1867, 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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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의 <봄의 꽃 Fleurs de Printemps>, 1864, 유화, 130-9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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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봄의 꽃 Fleurs de Printemps>, 1864, 유화, 116.8-9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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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유의 <꽃 습작 Etude de Fleurs>, 1866, 유화, 97.2-8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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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의 <화병의 꽃 Fleurs dans un Vase>, 1869, 유화, 64.9-54.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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