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의 <키어사지 전함과 알라바마 전함의 전투>



(작품은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소 볼 수 있습니다.)

마네의 <키어사지 전함과 알라바마 전함의 전투 Le Combat des Navires Americains Kearsarge' et Alabama>, 1864, 유화, 137.8-128.9cm.


055 마네의 <불로뉴의 키어사지 전함 Le Learsarge' a Boulogne(Bateau de Peche Arrivant vent Arriere)>, 1864, 유화, 81-99.4cm.


1864년 6월 미국에서는 동란이 3년째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은밀히 남부동맹을 돕고 있었고, 영국 또한 전함들을 영국 항구에 집결시킴으로써 남부동맹을 도우려 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영국의 이런 태도를 도발행위로 간주했습니다. 1864년 6월 19일 체르부르그로부터 14km 떨어진 곳에서 남부동맹의 알라바마 전함과 북군 전함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고 전투장면을 바라보았습니다. 알라바마 전함의 선장은 이미 북군 전함 60척을 침몰시킨 것으로 유명했으며 신문을 통해 파리 시민들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체르부르그의 호텔들은 이 사건을 취재하려는 기자들로 가득 찼습니다. 마네는 이 날의 전투장면을 생생히 캔버스에 담았고 제목을 <키어사지 전함과 알라바마 전함의 전투>라고 했습니다. 포탄을 맞은 배 너머로 북군의 배가 보이는 이 작품은 7월 카다르의 화랑에서 소개되었습니다.


마네가 이 날의 전투를 직접 보고 그렸느냐 하는 건 오랫동안 논란거리였습니다. 체르부르그는 파리로부터 360km 가량 떨어진 곳으로 마네가 직접 보았다면 그곳으로 가기 위해 많은 시간을 허비했어야 합니다. 마네가 직접 목격하지 않았더라도 전투상황을 신문이 매우 자세히 보도했기 때문에 본 듯이 그릴 수 있었습니다. 1864년 7월 중순에 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열린 바다 위의 작은 배들을 그리고 있네. 일요일에는 불로뉴에 정박한 북군 전함을 보러 갔네. 그 전함에 대한 습작을 갖고 돌아가려 하네”라고 적혀 있습니다. 프루스트는 마네가 직접 바라본 전투장면을 생생하게 그렸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그가 목격한 것을 그린 게 아니라 신문보도를 통해 상상해서 그렸다고 믿었습니다.


또 다른 편지에는 “지난 일요일 키어사지 전함이 불로뉴에 정박했더군. 난 그곳으로 보러 갔네. 난 그 전함에 대해서 훌륭하게 추측한 적이 있네. 게다가 난 바다 위에 있는 모양으로 그렸네. 자네가 보고 판단하기 바라네”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편지 내용으로 보아 그가 불로뉴에서 처음 그 유명한 전함을 보았고, <키어사지 전함과 알라바마 전함의 전투>를 그릴 때는 신문과 잡지의 삽화를 보고 상상력으로 묘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전투장면을 직접 보았든 아니든 이 작품이 관람자에게 준 감동은 전투의 위력이 아니라 바다의 위력이었습니다. 그는 두 대의 전함을 수평선 쪽으로 밀어놓고 원근법에 따라 크기를 조절하면서 넘실거리는 파도를 통해 바다의 위력을 묘사했습니다.


마네는 1860년대에 배를 주제로 여러 점 그렸고 1880년대 초에 그린 두 점의 <로슈포르의 탈출>은 유명합니다. 이 같은 해양화는 마네만 그린 것이 아니라 친구 화가들도 선호하는 그림이었습니다.


<키어사지 전함과 알라바마 전함의 전투>는 1872년 살롱을 통해 널리 소개되었으며 소설가이면서 평론가 줄 바르베이 도레빌리는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 난 이 작품 앞에서 매료되었고, 감각적으로 마네가 나를 매료시킬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이 작품은 자연과 풍경의 느낌으로서 아주 단순하며 강렬하고 … 미술계에 재능이 있고 영리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마네일 것이다. … 이 작품은 상상과 실행에 있어 매우 훌륭하다! 과시되고 혐오스러운 문화가 우리 모두를 부패하게 만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네는 자연을 그리는 훌륭한 화가가 될 수 있다. 오늘 해양화 <키어사지 전함과 알라바마 전함의 전투>로 그는 자연 자체와 혼연일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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