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인에게는 인간이 정한 법칙과 자연법칙이 구분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과학적 생각을 피력했지만, 입증을 목표로 말한 것이 아니라서 타당한 과학은 아닙니다. 기원전 5세기 만물은 불사불멸하며, 무한자에서 생기고 이로 돌아간다는 말로 유명한 밀레토스 학파의 한 사람인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기원전 610?-546)는 만물이 제일 실체primary substance에서 발생하고 “죄를 저질러 벌금을 내거나 형벌을 받지 않는다면” 다시 제일 실체로 돌아간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듯 고대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인간이 정한 법칙과 자연법칙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불이 조화로운 우주의 기본적인 자연적 원리라고 주장한 이오니아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os(기원전 535?-475?)는 태양이 지금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정의의 여신이 태양을 쫓아가서 처벌할 것이기 때문에 태양은 지금처럼 행동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불을 만물을 통일하는 근본물질로 본 그는 세계질서가 “일정한 정도로 타오르고 일정한 정도로 꺼지는 영원히 사는 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은 같은 강에 발을 담그지만 흐르는 물은 늘 다르다”는 유명한 말도 했습니다. 훗날 플라톤은 우리의 감각에 어떻게 나타나든 상관없이 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헤라클레이토스의 이 원리를 채택했습니다.


기원전 3세기경에 발생한 스토아Stoa 학파는 인간의 법칙과 물리법칙을 구분했지만, 그들이 보편적이라고 생각한 인간의 행동 규범들을 자연법칙으로 분류했습니다. 인간의 행동 규범이란 신을 존중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 등을 말합니다. 스토아Stoa란 전방을 기둥으로, 후방을 벽으로 둘러싼 고대 그리스 여러 도시에 있어서의 일종의 공공건축을 의미합니다. 이 학파의 창시자 제논Zenon(기원전 495?-430?)이 아테네의 한 주량stoa에서 강의한 데서 연유하여 이 말이 학파 전체를 나타내는 명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스토아 학파는 고정된 사상체계가 아니라,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그 사상에 상당한 차이가 있고 내용이 다양한 것이 특징입니다. 제논을 가리켜 아리스토텔레스는 변증법의 발명자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역설이 유명했음을 말해줍니다.


이러한 전통은 여러 세기 동안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13세기 중세의 기독교의 대표적인 스콜라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1224/25-1274)는 그 전통을 취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이용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죽은 물체들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에 의해서 종착점에 도달하는 것이 분명하다. ... 그러므로 자연의 모든 것 각각을 그것의 종착점에 도달하도록 이끄는 지적이고 인격적인 존재가 있다.

토마스 학파의 이버지인 아퀴나스는 교회학자 33명 중 하나이며, 로마 가톨릭에서는 그를 교회의 위대한 신학자로 여깁니다.


심지어 16세기에도 독일의 위대한 천문학자 요한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1571-1630)는 감각을 가진 행성들이 그들의 정신mind에 의해서 파악한 운동법칙들을 의식적으로 따른다고 믿었습니다. 물체를 의인화하는 습관은 고대로부터 16세기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점성술사라는 독특한 경력도 가진 케플러는 광학 연구 분야의 초석을 닦았으며, 굴절망원경을 개조하여 성능을 향상시켰고, 동시대 인물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망원경을 이용한 발견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데 공헌했습니다.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1942-)은 저서 『위대한 설계 The Grand Design』(2010)에서 자연법칙들을 의도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고대인들의 관심의 초점이 자연의 작동 방식에 있지 않고 작동 이유에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호킹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런 접근법의 취해 과학의 주요 토대가 관찰이라는 생각을 배격한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였다고 말합니다. 이는 정확한 측정과 수학적 계산이 고대인에게는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계산에 편리한 십진법은 기원후 700년경에야 인도인들이 산술을 강력한 도구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을 때 만들어졌습니다. 덧셈과 뺄셈을 나타내는 기호가 15세기에야 등장한 걸 안다면 고대인이 정확한 측정과 수학적 계산을 할 수 없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호킹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측정과 계산을 예측을 산출할 수 있는 물리학의 발전에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며, 그는 그 자신이 보기에 지적인 매력이 있는 원리들을 물리학의 토대로 삼았다고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스로 보기에 매력적이지 않은 사실들을 억제했고, 사건들이 일어나는 이유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사건 그 자체를 정확하고 상세하게 기술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이론은 무거운 물체가 일정한 속도로 낙하하며, 그 속도는 그것의 무게에 비례한다는 것입니다. 낙하하는 물체의 속도가 증가하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새로운 원리를 발명했는데, 물체가 자신의 자연적인 정지 위치에 다가갈수록 더 기뻐하며 전진하고 가속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물체를 의인화했습니다. 그의 이론은 예측적인 가치가 거의 없지만, 과학에 대한 그의 접근법은 2천 년 동안 서양 사상을 지배했습니다.


그리스인의 뒤를 이은 기독교인은 우주가 냉담한 자연법칙에 의해 지배된다는 생각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가 특별하지 않다는 생각도 거부했습니다. 기독교인은 신이 인간을 특별히 사랑해서 아침마다 해에게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거라” 하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해가 뜨고 진다고 믿었습니다. 물체를 의인화하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호킹은 중세는 단일하고 정합적인 철학 체계가 없던 시기였지만, 우주가 신이 만든 인형의 집이고 종교는 자연 현상에 대한 탐구보다 훨씬 더 값어치가 있다는 것이 당시의 통념이었음을 지적합니다.


실제로 1277년 파리의 탕피에 주교는 교황 요한 21세의 지시로 저주받아야 할 오류 혹은 이단적 주장 219개 목록을 공표했는데, 그중에 자연이 법칙들을 따른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신의 전능함과 상충하므로 저주받아야 마땅하다고 한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교황 요한 21세는 몇 달 뒤 중력법칙에 의해 죽었는데, 그의 처소의 지붕이 무너져 그를 덮친 바람에 죽은 것입니다.


근대적 자연법칙의 개념이 생긴 건 17세기였습니다. 케플러는 자연법칙을 근대 과학적 의미로 이해한 최초의 과학자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물활론animism의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물체를 의인화하는 습관을 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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