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화가들에 대한 일본 판화의 영향
 

(작품은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19세기 중반의 프랑스 미술은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 중에서도 일본 미술의 영향이 두드러졌습니다. 1853년 다시 개항된 코모도르 마퇴유 항구를 통해 일본의 미술작품과 가제도구들이 유럽으로 들어왔으며 일본 미술은 한동안 유럽 전역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일본 화가들의 그림을 프린트한 사본들이 1860년에 개업한 포트 오세안에서 매매되었고, 1890년에는 일본 미술작품들이 국립미술학교에서 소개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독일 함부르크 태생의 지그프리트 뱅Siegfried Bing(1838-1905)이 쓴 『일본 예술가들 Le Japan Artistique』이 출판되었으며 마네와 모네도 뱅의 책을 읽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유럽 예술가들은 일본의 회화·조각·판화를 연구하면서 동양의 독특한 요소들을 그들의 작품에 응용했습니다. 일본 대가들의 판화에 나타난 광택 있는 평면과 힘 있는 색, 과감하게 단순화된 외곽선과 가파르면서 날카롭게 각진 형태, 평면적인 디자인, 대담한 칼자국 등은 유럽의 예술가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고, 특히 우키요에 화가, 판화가 기타가와 우타마로(1753-1806), 가쓰시카 호쿠사이(1760-1849), 안도 히로시게(1797-1858)의 다색 목판화는 그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우키요에는 17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에도 시대에 성립된 풍속화로 사람들의 일상생활이나 풍경, 풍물 등을 그린 것을 말합니다. ‘우키요浮世(부세)’란 말의 뜻은 ‘떠다니는 세상의 그림’, 즉 현세의 이모저모를 그린 그림이란 뜻입니다. 현재 도쿄에 해당하는 에도, 그리고 오사카, 교토 등지 이곳저곳에 퍼져있던 현대풍의 새로운 문화를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똑같은 발음의 다른 말 우키요는 ‘근심어린 세상’이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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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거리의 가수 La Chanteuse des rues>, 1862, 유화, 171-106cm.

이 작품은 카페에서 노래 부르는 무명 여가수의 그림으로 살롱에 받아들여졌습니다. 마네는 화실 근처 프티트폴로뉴 동네를 거닐다가 여가수가 카페 밖으로 할 발 내딛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의 모델은 <풀밭에서의 오찬 (일광욕) Le Dejeuner sur l'herbe (Le Bain)>에서 누드로 모습을 드러낸 빅토린 뫼랑입니다. 그녀는 마네의 작품에서 다양한 역할을 했으며, 여기서는 가난한 여가수의 모습으로 포즈를 취했습니다. 빅토린은 기타를 든 손으로 땅에까지 닿는 긴 드레스를 살짝 들어 올렸고 버찌를 입가에 대고 수줍은 표정을 지었는데, 입가의 붉은 버찌가 왼손에 들고 있는 노란 종이, 갈색, 회색, 초록색의 드레스와 대조가 됩니다. 마네는 배경을 어둡게 하여 빅토린의 환한 얼굴이 뚜렷이 나타나게 했으며, 이러한 점은 마네 회화에 나타나는 독특한 요소로서 그가 의도적으로 구성한 연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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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빅토린 뫼랑의 초상>, 1862, 유화, 43-43cm.

빅토린은 1861년 12월부터 1863년 1월까지 마네의 스승 쿠튀르의 모델로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마네가 그녀를 만난 건 1862년이었으며, 1860년대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합니다. 빅토린은 186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한동안 그곳에서 살다가 돌아와 1870년대 초 다시 마네의 모델이 됩니다. 그녀는 스스로 회화를 공부해 화가가 되었는데, 1876년에는 자화상으로 살롱에 입선합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해 마네는 살롱에 낙선하는 고배를 마십니다. 1879년에는 그녀와 마네의 작품 모두 살롱에 입선하여 두 사람의 작품이 같은 전시실에서 전시되었습니다. 마네가 타계한 후 빅토린이 1883년 8월 마네의 미망인 수잔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당시 그녀가 마네의 모델로서 활동한 일부를 알 수 있습니다.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께서는 그분의 많은 작품에 제가 포즈를 취했고, 특히 그분의 걸작 <올랭피아>를 위해서도 포즈를 취한 걸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분은 절 돌보아주셨고, 종종 말씀하시기를 작품이 팔리면 감사의 표시로 돈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전 그대 어렸으며, 그분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저는 미국으로 갔습니다. 제가 돌아왔을 때 그분은 많은 작품을 포르(마네의 작품을 수집한 바리톤 가수)에게 팔았고, 제게 그 돈의 일부는 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말씀을 감사하게 받아들였지만 돈은 사양하면서 제가 더 이상 모델 노릇을 하지 못하게 되면 그때 약속하신 말씀을 상기시켜 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찍 모델을 하지 못하게 되었군요.

모델이 보너스를 사양한 건 특이한 일로 그녀의 자존심이 강했고, 마네와의 관계가 단순한 고용 이상의 서로 존중하는 관계였음을 시사합니다. 마네가 1862년 빅토린을 모델로 그린 세 점과 풀밭에서의 오찬>, <올랭피아>에서 그리고 그 후의 작품들에서 빅토린의 재능과 그녀를 통한 마네의 상상력이 빼어났음을 봅니다. 흥미로운 건 마네가 아내 수잔을 모델로 그린 열 점 가운데 유명한 작품이 없었던 반면 빅토린을 모델로 한 작품 열한 점은 모두 유명해졌다는 것입니다. 모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마네의 대표작 중 하나인 <거리의 가수 La Chanteuse des rues>에서 일본 판화의 영향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종 모양으로 둥글게 한 드레스를 평편하게 이차원적으로 채색하고 가장자리를 밝은 색으로 칠해 여인의 모습이 어두운 배경으로부터 두드러지게 보이게 한 효과는 일본 판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소입니다.


그 외에도 당시 화가들의 그림에서 나타난 과감한 생략과 사선구도 등은 일본 판화에서 받은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이용한 것들입니다. 특히 클로드 모네는 대각선 구도의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그네가 그린 풍경화와 해양화에서 나타난 파도가 치솟는 형태 등은 히로시게와 호쿠사이 판화의 특징적인 요소들입니다. 유럽의 화가들은 이렇게 자신들의 그림에 일본 판화의 요소들을 응용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 판화를 그림의 배경으로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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