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폴록과 친구들>
11월 17일 청담동에 있는 오페라 갤러리에서 강의했습니다. 강의 제목이 <폴록과 친구들>이었습니다. 큐레이터가 저의 책 제목을 강의 제목으로 한 것입니다. 강의는 ‘잭슨 폴록과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폴록이 추상표현주의의 간판스타였으니까 그와 동시대 화가들의 다양한 회화세계를 조명한 것입니다.
다음은 수강자들에게 나눠준 글입니다.
1.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는 미국의 고유한 양식이지만, 공통의 양식이 아니라 유행이다. 소위 말하는 뉴욕파New York School를 지칭한 말이며,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뉴욕화단의 간판스타는 잭슨 폴록이었다.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으로 그 양식이 규정된 폴록의 회화세계를 알아보고 동시대에 활약한 예술가들은 무엇을 했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2. 추상표현주의라는 명칭을 모마Museum of Modern Art(MoMA)의 초대 관장이자 미술사학자 알프레드 H. 바 주니어Alfred H. Barr, Jr(1902~81)가 1929년 미국에서 전시 중이던 러시아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의 초기 유동적 작품에 대해서 형식적으로는 추상이나 내용에 있어서는 표현주의라는 의미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바의 견해에는 타당성이 있었는데, 칸딘스키는 색채 대비에 대한, 그리고 추상에 여러 해 동안 자취가 남아 있던 유동적 몸짓에 대한 취향을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과 공유했기 때문이다. 추상표현주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최초의 미국 미술운동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전, 추상이 어떻게 진전되어 왔고, 표현주의는 또 어떻게 진전되어 왔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추상표현주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초현실주의에 대한 이해도 구한다.
3. 전후 유럽에서는 타시즘Tachism과 앵포르멜Informel이 유행했는데, 미국식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유럽식 표현방법들이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가 거칠고 실험적인 카우보이 스타일이었던 데 비해 유럽의 타시즘과 앵포르멜은 매우 서정적이고 기교면에서 뛰어났다. 1945년경부터 10여 년 동안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에 상응하여 유럽에서 전개된 앵포르멜은 1950년 프랑스의 평론가 미셸 타피에Michel Tapie(1909~87)가 창안한 용어로 입체주의에서 나온 어느 정도 엄격한 추상 경향이나 네덜란드 화가 피트 몬드리안과 데 스테일 화가들이 보여준 것 같은 다양한 기하학적 추상 형식과는 대조적으로 잠재의식의 환상을 직접 표현해내는 ‘서정적 추상’ 작품에 일괄적으로 적용되었다. 앵포르멜의 개념과 거의 동일하며 정확히 구별되지 않은 채 혼용되기도 하는 것으로 타시즘이 있다. 타시즘은 ‘얼룩’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Tache에서 파생되었다. 타시즘은 색채의 조화에 대한 의식적인 조직보다는 화가의 감정적 상태를 표현하는 ‘기호’와 ‘제스처’로서의 얼룩과 색면들의 자발적인 상호작용에 더 큰 중요성을 부여했다. 한편 앵포르멜은 무의식적 서예의 형태로서의 추상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엄격한 의미에서 타시즘은 주제와 관계없이 색의 얼룩을 응용한 것을 가리킨다.
추상표현주의와 타시즘, 앵포르멜의 차이는 추상표현주의가 초현실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구상적 요소가 두드러졌으며 미국인의 자의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이다. 1950년대 서양미술의 중심은 뉴욕이었고, 따라서 추상표현주의가 강세를 띠었다. 대전을 종식시킨 후 미국의 이미지는 전 세계에 경제적·정치적 그리고 예술에서 강국으로 부상되었고, 많은 나라가 미국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유럽은 전후 세계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했으며 파리는 더 이상 미술의 중심이 못되었다. 러시아와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에서는 창조적 미술이 억압받고 있었다. 전후 추상표현주의가 미국의 고유한 양식으로 등장하자 전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4. 추상표현주의가 서양미술 전반에 끼친 영향을 알아본다. 해프닝의 선구자 앨런 캐프로Allan Kaprow는 ‘액션 페인팅’에서 영감을 받아 해프닝Happening을 창안했다고 말했다. 행위 자체가 모티프가 된 건 폴록의 추상표현주의 회화가 끼친 영향이다. 해프닝이 새로운 장르로 등장함으로써 퍼포먼스와 바디아트가 자연스럽게 진전된 형식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양식면에 있어서 추상표현주의가 끼친 영향은 전체론적all-over 구성이다. 서로 긴밀하게 연관된 부분들을 조화롭게 배치해 하나의 전체로 통일시키는 전통 구성과는 대조적인 전체론적 구성에는 분리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고, 일정한 체계가 없는 회화 공간 속에 단일한 이미지만 있다. 전체론적 구성과 더불어서 자동주의 기법도 특기할 만하다. 자동주의는 무의식의 심상을 묘사하는 데 매우 적절한 기법이었다. 오늘날에도 전체론적 구성에 자동주의 기법을 사용한 추상표현주의 회화가 건재하고 있으며, 화랑이나 미술관에서 이런 스타일의 작품을 접하게 된다.
잭슨 폴록의 액션페인팅
1929년 뉴욕의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토머스 하트 벤턴으로부터 회화를 배운 잭슨 폴록Jackson Pollock(1912~56)은 1930년대에 지방주의 양식으로 작업하면서 동시에 멕시코 벽화가들의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1943년 뉴욕의 금세기 미술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곧 그 화랑의 대표적인 화가가 되었다. 1940년대 중반 다소 틀에 박힌 우아함을 지닌 선적 양식과 풍부한 임파스토를 강조한 낭만적 양식으로 그렸으며, ‘뿌리고 튀기는’ 기법은 1947년 갑자기 나타났다. 그는 새로운 회화 공간을 도입했는데, 서예적, 혹은 갈겨 쓴 염료 기호들이 화면에 매우 얕은 깊이를 창출했다.
추상표현주의에서 특별히 잭슨 폴록의 작품을 염두에 두고 해럴드 로젠버그Harold Rosenberg(1906~78)는 ‘액션페인팅Action Painting’이란 새로운 용어를 사용했다. 로젠버그는 1952년 12월호 『아트 뉴스Art News』지에 기고한 시각예술에 관한 첫 중요한 글 ‘미국 액션페인팅 화가들 The American Action Painters’에서 처음 이 용어를 사용했다. 로젠버그가 회화작품에 대한 해석으로 중요하게 여긴 건 화가의 창조행위였다. 화가의 충동적 창조력에 자유로운 표현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액션페인팅을 정의한 그는 그리는 행위 자체를 완성된 작품보다 더 중시했다. 그는 일부 화가들, 특히 폴록이 캔버스를 창조행위를 위한 투기장으로 삼은 데서 화면에서 발생하는 것이 회화가 아니라 이벤트임을 발견했다. 그가 폴록의 작품을 이벤트로 해석한 건 적중했는데 그 밖에 달리 설명할 만한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로젠버그와 달리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유럽 전통 미학 이론에 근거하여 추상표현주의를 해석하려고 했다. 그는 창조행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작품의 완성도에 중점을 두었다.
폴록은 서예적 글쓰기로 자동주의 기법을 능가했는데, 유럽 화가들의 기법은 의도적으로 사용되었지만 폴록의 것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전적으로 우연에 의존하는 방법이었다. 그는 이런 효과를 붓을 사용하지 않고 깡통에 구멍을 내어 흘리거나 붓에 물감을 묻혀 붓을 흔들어 물감이 캔버스에 떨어지게 하는 ‘뿌리고 튀기는 drip and splash’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뿌리고 튀기는’ 기법은 1947년 무렵 다소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폴록은 이젤을 사용하는 전통 방법 대신에 캔버스를 바닥이나 벽에 고정시키고 통에 든 물감을 붓고 뿌렸다. 그런 뒤 붓이 아니라 막대기, 흙손, 나이프로 물감을 다뤘고 때로는 모래, 유리조형물, 혹은 이물질을 혼합하여 임파스토 효과를 내기도 했다. 이런 방법은 화가의 무의식을 드러내거나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점에서 초현실주의의 자동주의와 공통점이 있다.
‘뿌리고 튀기는’ 기법으로 폴록은 ‘전체론적’ 구성 회화를 창안해낸 화가로 알려졌다. 그의 회화는 캔버스의 형태와 크기에 좌우되지 않으며 실제로 완성된 작품을 보면 이미지에 맞게 캔버스의 일부가 깎여 있거나 잘라져 있다. 이후 이런 양식에 반발하고 나온 후기 회화적 추상 화가들이 캔버스의 형태를 회화적 이미지와 일치시키는 데 역점을 둔 것도 부분적으로는 폴록의 전체론적 구성 양식의 영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