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떨어진 놈과 손대기 없기
가을을 만끽하고 싶어 설악산을 다녀왔습니다.
토요일에는 백담사로 갔는데, 걸어 올라가기 힘들을 버스를 탔습니다.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버스에 승차하는 데 1시간이 걸렸습니다.
좁은 길을 꾸불꾸불 오르는데 계곡에 펼쳐진 나무들의 가을 옷차림이 매우 이름다웠습니다.
백담사는 647년, 진덕여왕 1년에 자자대사가 한계령 부근의 한계리에 절을 세우고 한계사라고 했답니다.
590년에 불에 타 재건하고, 785년에 다시 불에 타고, 984년에 다시 불에 타고 재건하면서 절을 이주하고 절의 이름도 바뀌었습니다.
1772년, 영조 51년에 또 불에 타서 중건했다가 1783년, 정조 7년에 백담사라고 부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백담사는 무엇보다도 한용이 선생님께서 머물면서 <불교유심론>, <십현담 주해>, <님의 침묵> 등을 집필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6.25 때에 절이 소실되고 1957년에 재건했으므로 절터만 유서가 깊지 새로운 건물들로 꾸며졌습니다.
옛 문화재라고는 하나도 없는 곳이지만, 높은 산속 널따란 곳에 아늑한 지형에 둘러싸인 절입니다.
절은 많은 사람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가을을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님이 머물며 교육하던 곳과 만해 기념관을 둘러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분을 존경하던 터라 백담사를 찾은 것은 즐거움이었습니다.
헌데 작은 방 하나에 전두환 대통령이 머물던 곳이란 팻말이 붙여져 있고, 그 인간이 쓰던 이불, 옷 등등을 보관하고, 사진 넉 장을 크게 확대해 진열한 것을 보고는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그런 인간이 어떻게 유서 깊은 백담사에서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는지!
백담사를 내려가기 위해 버스는 타는 데 1시간 30분이나 걸렸습니다.
9대의 버스가 연신 사람들을 실어 날랐지만, 워낙 사람들이 많아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린 것입니다.
백담사를 내려와 대포항에 숙소를 마련했습니다.
지인과 함께 대포항에서 회를 많이 먹었습니다.
도저히 더 먹을 수 없을 만큼.
이튿날 아침 날이 흐려 일출을 보지 못한 것이 유감이었습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호텔에 묵었으므로 창문 밖으로 수평선이 보이고 불을 환희 켠 오징어 어선이 멀리 보이지만, 태양이 떠오르는 건 볼 수 없었습니다.
아침 일찍이 설악산으로 향했는데, 오전 8시인데도 벌써 사람들로 가득 했습니다.
차들이 거북이 걸음이라 걸어서 신흥사에 가는 데만도 거의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설악산은 그야말로 일품입니다.
처음 찾은 곳은 아니지만, 매우 여성적이면서도 위엄을 갖춘 산입니다.
울산바위는 환영입니다.
한계령에서 내려다보는 것은 장관입니다.
울긋불긋 가을옷으로 단장한 산과 기암절벽은 보는 이를 들뜨게 합니다.
신라시대에 이런 곳에 절을 지었다니 조상들의 불심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가이드가 두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나뭇가지에 걸려 살아난 놈을 뭐라고 부르느냐는 퀴즈였습니다.
아무 답을 말하지 못하자 “덜 떨어진 놈”이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는 평생 할머니에게 지면서 살아온 영감이 하루는 꼭 할머니에게 이기고 깊어 할머니에게 내기를 했답니다.
누가 오줌을 더 멀리 나가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답니다.
그런데 그 내기에서 할머니가 영감을 이겼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길 수 있느냐는 질문에 아무도 답을 못하자, 가이드가 말하길, 할머니가 영감에게 귓속말로 “손대기 없기”라고 했답니다.
남춘천에서 추억이 될 경춘선을 타고 귀경했습니다.
금년 말에 전철이 완공되면 느릿느릿 그러나 낭만 만점인 경춘선을 사라집답니다.
경춘선을 어제 마지막으로 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