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섭 의원 격무로 별세

<한국정당정치 실록>(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국회는 4월 29일 민주당 자유당 양당 4명씩과 무소속 1명으로 개헌특위 기초위원회를 구성했다.
자유당에서 이재학, 박세경, 이형모, 정운갑, 민주당에서 엄상섭, 조재천, 정헌주, 윤형남, 그리고 무소속의 황호현 의원이 선정되어 9명으로 구성되었고, 위원장에 엄상섭 의원이 선정되었다.
개헌특위는 연일 회의를 거듭하여 그 과정에서 엄상섭 위원장이 과로로 졸도 사망했고 후임에 정헌주 의원을 뽑는 등 불상사를 겪으면서도 개헌안 작성에 열성을 다했다.
개헌특위의 인선에서 보듯 자유당은 온건한 인물들이었고, 민주당은 기초위원 선정에까지 신파(엄상섭, 조재천)와 구파(정헌주, 윤형남)로 나뉘었다.


공법학회에서 개헌 초안을 만들어 국회에 보내오는가 하면, 개헌특위 주최로 공청회를 열어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렇게 각계의 의견을 청취하고 협의를 거듭한 개헌특위는 국회 제안 시한을 앞둔 5월 9일 개헌 요강 작성에 대체로 합의했다.
이런 작업이 즉시 국회해산을 주장하던 세론을 가라앉혔고, 국회해산 보류는 여야 의원들 사이에 합의된 사실처럼 되었으며, 언론들도 처음의 주장을 선회하여 현 국회에서 내각책임제 개헌을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동조했다.
5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 구파의 조영규 의원 외 12명의 명의로 긴급동의 안을 제출했다.
내용은 개헌특위는 10일까지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과, 과도정부는 정·부통령 선거를 내각책임제 헌법이 개정되어 공포될 때까지 보류하라는 것이었다.
이 긴급동의 안은 가결되었다.


그러나 이 동의안은 앞서 국회에서 의결한 시국수습안의 제2항과 정면으로 배치되어 2항목을 완전히 사문화시켰다.
제2항은 3·15선거를 무효로 하고 재선거를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불과 6일 만의 대변화였다.
더구나 5월 1일 과도정부가 3·15부정선거 무효를 확인한 다음날이었다.
이것은 상황의 변화에서 온 결과가 아니라 민주당 구파와 자유당의 합세에 신파가 밀리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국회의 시국수습 결의안은 정파 간의 타협의 산물이었기 때문에 각 항 사이에는 상충된 점이 있었던 것인데, 그 모순이 바로 노출된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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