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안 마련에 불과 2주일

<한국정당정치 실록>(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당시 학생들을 포함해서 많은 정치인들과 언론들은 기존 국회를 즉시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해서 새 국회를 구성한 뒤 헌법개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모처럼 국회의 주도권을 장악한 민주당은 국회를 즉시 해산할 경우 정치적 공백이 생겨 무질서가 생길 우려가 있다면서 현 국회에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민주당의 신파와 구파의 정치적 대립과 정치적 계산에 따라 자당의 이익추구를 앞세웠기 때문이었다.
헌법개정은 자유당이 바라던 바라서 추진될 수 있었는데, 개정을 통해 자유당은 자당을 보호하려고 했고, 그럴 만한 영향력도 아직은 가지고 있었다.
민주당을 공산주의자들로 기소한 검사들이 자유당의 반대로 62 대 73으로 부결된 것만 보아도 아직 자유당이 건재함을 말해 주었다.
자유당은 헌법개정이라는 정치적 지렛대(political leverage)를 십분 이용해서 미래의 정치적 기회를 마련하려고 했다.


내각책임제 개헌안은 비교적 쉽게 정리되었다.
이는 민주당이 그 전신인 한국민주당 때부터 주장해 왔던 것인데, 6·25전쟁과 부산 정치파동 때 두 번이나 국회에 제안 상정한 경험이 있었다.
때문에 개헌안을 마련하는 데는 불과 2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민주당은 완전한 표결방법을 모색했다.
기명투표로 반란표를 예방하자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회법을 개정해야만 했다.
6월 1일 민주당의 서범석, 이태용 의원들 등에 의해 국회법 개정안이 제안되었다.
제안 이유에서 헌법개정의 안전을 기하기 위해 기권, 무효 등의 산표 방지와 국회의원의 개헌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하는 데 있다고 했다.


이것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4사5입 개헌 통과 때 자유당이 기명투표를 주장한 일이 있었다.
이때 자유당은 자당의 기명투표 주장 논리도 국가기본법의 개정은 중요하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의 의사를 출신 유권자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했었다.
그때 야당 의원들은 발췌개헌 때 기립표결로 의원에 대한 표결의 자유를 박탈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강력히 반대했으므로 자유당은 끝내 관철할 수 없었다.
그런데 불과 5년 사이에 입장이 바뀌어 민주당이 자유당의 표를 강요하기 위해서 기명표결을 요구한 것이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현상이었다.
찬반 토론과정에서 일부 자유당 의원들의 반대토론이 있었으나 국회법 개정안은 가결되었다.
이토록 혁명의 외압적 외세는 대단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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