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는 미완성의 혁명

<한국정당정치 실록>(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그런 사유보다도 내각책임제 개헌을 위해 자유당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 구파는 자유당 의원들과의 관계에서 정치적인 선을 훨씬 넘어 인간적으로 깊은 유대를 맺고 있어 정치 이전에 인간이란 측면에서 혁명 분위기를 흩뜨릴 가능성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5월 23일 과도정부가 3·15부정선거 조사를 위해 이재학을 포함한 67명의 자유당 의원들에 대한 구속 등을 국회에 요청했을 때 민주당의 신파와 구파의 반응은 엇갈렸다.
구파는 이재학을 구해야 한다는 반응이었던 데 비해, 신파는 총선 이후 국회에서 구파와의 제휴를 경계했고 그를 정계에서 제거함으로써 자유당의 와해를 노렸다.
신파와 구파 양파는 혁명과업 수행이라는 측면보다는 사사로운 감정과 자파의 이해득실의 자(尺)로 문제를 재려고 했다.
이는 민주당이 바로 혁명 주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얻어진 떡과 내가 만든 떡 사이에는 인식과 소중함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었다.
민주당이 집권 9개월 만에 단명으로 몰락한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4·19혁명에 대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연구되어진 바가 많다. 혁명이냐, 의거냐에서부터 역사적 의의와 혁명의 사회적·경제적 배경 및 갈등의 구조까지 분석한 논문들이 많다.
여기서 이런 것들을 일일이 언급하며 논의할 필요는 없겠지만 혁명과업 수행과 정치보복의 문제에 관해서만은 언급할 필요가 있다.
혁명과업 수행과 정치보복은 반드시 구별되어야 한다.
시민혁명이란 오랜 세월 억압과 부정, 부패 등으로 시민의 가슴에 응어리졌던 것이 폭발한 것이다.
따라서 그 뒤처리는 이에 상응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마땅하다.
이것이 바로 혁명과업의 수행인 것이다.
이는 역사의 단죄와 더불어 과오를 매듭 짖는 일이다.
이런 과정에서 설혹 개인의 신상문제나 재산회수가 발생하더라도 이는 결코 사감에 얽힌 보복이 아니며, 혁명과업 수행과 정치보복 어느 한 쪽을 위해서 다른 한 쪽이 과격하거나 미온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4·19혁명의 처리는 정치보복을 피한다는 명분으로 민주당 신·구파와 자유당 사이의 이해갈등, 내분 때문에 비혁명적으로 처리된 점이 많았다.
일반적으로 시민혁명의 기본 목표는 첫째, 독재자를 타도하고, 둘째, 독재자가 의거했던 정치 및 사회제도를 개편하며, 셋째, 독재자와 결부했던 구지배 세력을 제거하고, 넷째, 새로운 경제 질서를 확립하며, 다섯째, 새로운 사회풍토를 조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4·19혁명은 독재자를 타도하고 그가 의거했던 정치와 사회제도를 개편하기는 했지만 그 밖의 것들은 달성하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4·19혁명은 미완성의 혁명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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