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쟁점은 거의 없어

<한국정당정치 실록>(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파의 공천을 앞세워 출마한 사람은 무려 112개 지구나 되었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확산되자 당은 이들을 당의 지명 없이 입후보했다는 이유로 제명해 버렸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당의 공식 공천자를 누르고 당선되었을 때 복당(復黨)문제를 놓고 또 다시 두 파는 의견이 대립되기도 했다.


이러한 파 공천문제와는 달리 신파와 구파는 순수 무소속을 가장하여 상대파인 유력인사와 대결시킨 사례도 있었다.
김도연의 회고록에 의하면, 구파 리더인 자기 구역에 신파에서 신상초를 내세워 자신을 낙선시키려 했다고 한다.


선거 양상에서 한 가지 더 주목되었던 것은 3·15부정선거 관련으로 수감되어 옥중에서 입후보한 사실이다.
“위대한 한희석 선생에게 깨끗한 한 표를”이라고 쓴 플래카드를 내걸고 이들이 옥중에서 출마한 사실은 4·19혁명을 부정하거나 모독한 행위였다.
4·19혁명의 젊은 영령들이 분개하여 묘소를 갈라 헤치고 다시 일어날 지경이었다.
시민혁명에 의해 부정되고 붕괴된 구정권의 수뇌 인사가 옥중에서 입후보 의사를 가졌다는 자체가 역사인식의 결여이거나 국민을 우롱하는 짓이었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혁명의 분위기가 얼마나 흐려졌고, 혁명과업이 비혁명적인 방법으로 처리되고 있었는가를 실감하게 했다.
더구나 이재학은 옥중 당선까지 되었다.


다음으로 7·29선거에서 각 정당이 내세운 선거공약을 요약해 보면, 그때까지 민주당이 선거 때마다 금과옥조로 앞세우던 내각책임제가 실현되었기 때문에 정치적 문제는 크게 부각된 것이 없다.
각 당은 다 같이 막연하게 혁명과업 완수를 가장 먼저 제시했고, 다만 혁신 정부의 대두로 경제사회 및 통일정책에서 다소의 차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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