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원과 군중 난투극

<한국정당정치 실록>(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13개 선거구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의 공통점은 자유당 시절에 부정선거 행위에 관여했거나 자신들을 괴롭혔던 자들이 7·29총선에 참여한 것에 대한 지역 민중들의 반발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당시의 정황을 이해하기 위해 한 가지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경찰관 출신의 자유당 소속 전 국회의원 신영주와 민주당 신파계 박기정은 모두 유력한 인사들로 백중세를 보이고 있었다.
개표 당일에 44개 투표함 중 30개의 개표 결과 신영주 후보가 박기정 후보보다 992표를 리드하게 되자 박기정 후보 측은 개표 부정을 항의했다.
이때 신영주 후보 측은 선거운동원과 군중 사이에 난투극이 벌어져 투표함 9개가 불살러지고 30여 명의 부상자를 냈다.
뿐만 아니라 신영주 후보를 납치하여 군민재판에 회부했다가 경찰에 인계했다.


그날 밤 경찰이 신영주 후보를 탈출시킨 것이 화근이 되어 이튿날에는 경찰서장이 2천여 명의 군중에게 납치되어 심한 봉변을 당했다.
이 같은 무법 사태가 계속되자 8월 1일 군이 동원되어 사태를 수습했다.
민의원으로 당선된 박기정은 난동사건의 주모자 혐의로 조사받았으나 불기소 처분되었다.
그러나 다시 신영주 측의 재정 신청으로 대구 고등법원 심의에서 유죄로 판정되었다.


7·29총선 중 또 한 가지 주목을 끈 점은 민주당 구파에 의한 분당론이었다.
선거열기가 절정에 이르고 있었을 때 참의원에 입후보한 소선규가 전주 유세에서 보수 양당제의 필요성과 민주당의 분당 불가피론을 주장했다.
이어 금산에서 유진산이 맞장구를 쳤고, 서울에서는 김도연과 서범석이 호응했다.
김도연 회고록에 의하면 이는 우연한 일치가 아니었고 사전에 구파 중요 간부들의 양해 아래 행해진 것이라고 했다.
총선 후 불과 5일 만인 8월 4일에 공식적으로 분당선언이 나온 것은 이 같은 점을 뒷받침해 준다.


이같이 구파 지도급에서 선거유세를 통해 분당론을 제기한 것은 대국민선언으로서 분당필지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이 선언은 신파와 구파 후보자들 사이의 경쟁을 더욱 가열시켰다.
공천과정에서 당으로서는 명분상 단일후보를 내면서도 내심으로는 양파가 갈라지기를 작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파 공천지구 가운데 55개 지구에서 구파계 인사가 경쟁하고 있었던 한편, 신파는 구파 공천지구에 26명을 내세워 경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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