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내각이냐, 연립내각이냐
<한국정당정치 실록>(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그러나 불과 이틀 전에 장면 내각에 불참하기로 결의를 한 구파로서 다시 참여 쪽으로 선회하기란 의원들을 설득하는 데 있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또다시 동원예식장에서 구파 의원총회가 소집되었다.
유진산은 설득에 열을 올리면서 “우리와 당도 중요하지만 국가와 민족은 더욱 중요하다.
우리가 비록 집권은 못했다고 하더라도 민심을 이반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며, 4·19정신을 계승함으로써 민의에 보답해야 한다.
현 단계에서는 신파와 구파를 막론하고 우선 정치적 공동책임을 의식해야 할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장장 7시간 동안 격론을 거듭한 끝에 연립내각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김도연과 유진산이 구파 측 입각자 명단을 가지고 조각의 산실인 반도호텔의 국무총리실로 향했다.
약속시간 3분 전에 도착했다.
장면 국무총리는 자기의 막료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김도연과 유진산이 내각구성에 협력하기로 결정을 보아 추천 명단을 가져온 뜻을 비치자 장면은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구파 별도의 교섭단체 등록을 보류하고, 둘째, 분당을 하지 않는 조건 하에서 거당 내각에 참여할 것을 동의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적어도 4·19혁명의 뒷처리를 해야 하는 초대 내각은 국무총리와 더불어 진퇴를 함께 할 정치적 연대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는 신파와 구파 사이의 근본적 의견차이가 있었다.
신파는 거당 내각의 명분을 내세워 분당과 구파 별도의 교섭단체 구성을 막자는 것이고, 구파는 어디까지나 분당을 전제로 연립내각에 참여했던 것이다.
요컨대 민주당 간판 아래서 선거내각이냐, 분당을 전제한 연립내각이냐의 입장과 의견의 차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