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한계를 넘어 방종으로

<한국정당정치 실록>(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1961년 새해에 접어들면서 4월 위기설이 유포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위기의식이 가중되어 갈 때 3월 22일에 있었던 횃불 데모로 소요가 절정을 이루면서 4월로 이어져 갔는데, 정부로서는 그에 대해 통제능력이 없었다. 국가의 권력은 위축되어 있었으며 상대적으로 자유는 그 한계를 넘어 방종으로 치닫고 있었다.
민주당 집권기간은 한국에서 처음 맞는 자유의 만개기였다.


장면은 자서전에서 그때의 상황과 자신의 대처 태도에 관해 다음과 기술했다.


자유당과 피투성이 씨름을 하면서 민주당이 국민에게 공약한 것은 자유의 절대 보장과 독재의 배제였다.
그래서 우리는 집권과 아울러 자유를 약속했다. 연일 계속되는 데모로 인해 사회가 혼란에 빠졌지만 민주당은 공약을 위배할 수가 없었다.
무슨 핑계로든지 계엄령이라도 선포할 수도 있었지만, 총검에 의한 외형적 질서는 진정한 민주적 질서가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학설로 배운 자유는 혼란을 일으키지만 경험으로 체득한 자유는 진정한 민주주의 단단한 초석이 되는 것이다.
자유가 베푼 혼란과 부작용에 국민이 스스로 혐오를 느낄 때 진실한 자유를 얻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장면의 인식은 파탄의 미스였다. 당시로서는 이상적인 자유를 구가할 적절했던 시기가 아니었다.
장면이 기대했던 자유를 바탕으로 하는 질서가 들어서기도 전에 통치기능이 마비되었고 민주정치의 파행성을 맛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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