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슬러는 제1차 세계대전 종료 직후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건축가’라는 단어는 본래 의미대로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아키(archi)’와, ‘씌우다’ 또는 ‘칠하다’를 뜻하는 ‘텍터(tector)’의 합성어이다.
나아가서 라틴어의 어원을 조사해보면 ‘창시자’ 또는 ‘제안자’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적어도 건축가는 집을 짓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는 행위도, 조각하는 행위도 본래는 건축가의 임무 가운데 하나이다.
나아가서 극장을 짓는 일도, 무대구조를 생각하는 일도 건축가의 임무를 실천하는 적극적인 방법에 속한다.
건축가의 임무는 생각보다 훨씬 더 폭넓고 중요하다.
따라서 건축가는 보다 나은 생활환경을 위한 기술적인 탐구는 물론, 다양한 영역에 걸쳐 연구된 기술적 성과를 자신의 사고체계 내부에서 정리해야만 하는 것이다.
오늘날 예술가의 활동은 다양한 전문분야로 분화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지나치게 전문화되어버린 현대라는 시대의 불행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키슬러는 이같이 불행한 전문화 시대의 여파에 저항하면서 다양한 영역에 걸쳐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를 추구했다.
여기에 키슬러가 건축가, 극장디자이너, 전시디자이너, 인테리어디자이너, 화가, 조각가, 시인, 사색가 등으로 불리는 이유가 있다.
키슬러는 제1차 세계대전 종료 직후 빈에서 몇 개의 유니트로 구성된 회화작품을 제작했었다.
후에 ‘갤럭시 시리즈’로 발전하게 되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만년의 환경조각에 이르기까지 키슬러는 다양한 영역에 걸쳐 활동했다.
그가 언제 무엇을 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그의 연보를 도표화한 영역별 워크차트(work chart)를 책머리에 수록했다.11)
이것을 보면 독자들은 언뜻 무관해 보이는 각각의 작업들이 그의 주요개념인 엔드리스, 공간, 갤럭시에 근거하여 전개된 것이라는 사실과, 각각 다른 영역에서 행해진 그의 활동이 표현형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워크차트를 통해서 우리는 키슬러가 직접 언급한 바와 같이 ‘엔드리스’를 필두로 하는 그의 주요개념이 1920년대 초 이미 구체적인 작품으로 발표되고 있다는 점과, 그것들이 전부 ‘극장’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극장’이란 단순히 연극상연을 위한 ‘건축적 설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극적 시간의 전개에 필요한 ‘연출적 설비’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키슬러에게 연극과 일상생활은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는 예술작품은 물론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을 연극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실용적인 디자인에서도 연극적 공간의 연출을 목표로 했다.
나아가 건축을 포함하는 예술작품은 단순히 물리적인 기능을 충족시키는 역할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 심리적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인간의 일상생활은 몇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을 별개의 것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가 말하는 ‘연속성’이라는 개념도 이 같은 가치관을 배경으로 탄생한 것이다.
한편 1920년대의 유럽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 전후(前後)에 일어난 문명의 붕괴와 문화의 해체조짐을 우려했다.
이 같은 위기의식 속에서 그들은 새로운 사상적 체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것은 당시에 활동했던 전위예술운동 참가자 전원의 공통된 심경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키슬러와 적극적인 교류를 가졌던 운동은 구성주의와 데 스틸, 그리고 초현실주의이다.
만년의 키슬러는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유럽을 등지고 미국으로 망명한 많은 다른 예술가들처럼 미국적 풍토에 휩쓸리지는 않았다.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전형적인 유럽인 중 한 사람인 마르셀 뒤샹이 그러했듯이 키슬러도 미국에서 유럽식 삶을 살았던 보기 드문 타입의 예술가 중 한 사람이었다.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