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상연도 꼭 극장에 한정될 필요가 없었다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목재증산을 계몽하기 위한 거대한 프로파간다 패널을 도시의 도로 중앙에 설치하여 도시와 지방을 연결했다.
시민의식을 계몽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져 있는 이 같은 거대한 스케일의 프로파간다 이미지는 일상적인 풍경의 도시나 시골마을에 시각적 충격을 주어, 궁극적으로 일정의 문맥을 지닌 일상적인 생활환경을 이질적인 것으로 변모시키는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볼 수 있는 슈퍼그래픽의 원류를 여기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연극상연도 꼭 극장에 한정될 필요가 없었다.
페트로그라드7)에서 상연된 <겨울궁전 습격>이라는 제목의 극에는 6천여 명이 참가했다고 하는데, 이때 관객은 놀랍게도 10만여 명이었다고 전해진다.
이것이야말로 ‘도시연극’이라 할 수 있는 규모의 초(超)연극적 상연의 좋은 예이다.8)
다소 소규모의 예로는 1923년 트레차코프의 멜로드라마 <가스 마스크>의 상연을 들 수 있는데 이것도 극장무대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리펠리노는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가스마스크>는) 모스크바에 있는 가스공장의 기계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파이프들의 중앙에서 행해졌다.
그러나 이것은 극의 내용과 무관한 것으로 기계를 직접 소품으로 사용하는 구체적인 연출은 개입되지 않았으며, 호감을 주는 일련의 연기는 현실의 배경과는 무관하게 분리된 것이었다.
여기에 대해서 에이젠슈타인은 “미묘한 극적 구조는 공장의 거대한 터빈 발전기에 압도되어 검게 빛나는 원통형의 장치와 함께 참혹하게 자신의 모습을 움츠리고 있었다.
아마도 극의 목적은 연극과 실생활간의 경계를 타파하는 데 있었던 것 같다.10
리펠리노는 이 같은 시도는 에브레이노프의 형식주의에 대응하는 것이기도 하다면서, “생활을 극화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예술가들의 의무이다.
새로운 종류의 연출가, 다시 말하면 생활의 예술가가 태어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구성주의는 생활의 예술화를 목표로 했다.
이 같은 극적 공간과 일상의 만남은 새로운 형태의 이화작용(異化作用)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유리 안넨코프의 저서 좥동시대인의 초상좦을 보면 1923년 3월 메이어홀드는 S. 트레티아코프의 <소란스런 대지>를 상연했는데, 공연 중 객석에 있던 트로츠키가 무대 위에 등장했었다면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11
항상 그렇듯이 메이어홀드의 연출은 다양하면서도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었다.
희곡의 테마는 내전, 짜리즘9)의 붕괴, 백군의 괴멸이었다.
L. 포포바의 구성주의적 무대장치에는 스크린이 도입되었는데 주로 정치적인 슬로건이 영사되곤 했다.
예를 들어 “이 상연을 군사 인민위원회의 레후 타운드비치 도로츠키에게 바친다”라는 문자가 영사되고 이것을 읽은 관객들은 기립하여 박수를 치면서 “인터네셔널”을 외치기 시작했다.
트로츠키도 기립해서 박수를 쳤다.
이어서 그 앞에서는 실물의 장갑차, 오토바이, 트럭 등이 관객석을 횡단해서 무대 위로 올라가는데, 이것 또한 관객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붉은 군대 만세!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향해 전진!”등.
어떤 막의 도중에 우연히 트로츠키의 좌석을 뒤돌아보니 벌써 그는 자리를 뜨고 없었다.
그가 연극이 마음에 들지 않아 가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게 트로츠키는 2-3분 지나자 무대 위에 등장했다.
그리고 배우들이 열어준 길 사이로 걸어 나와서는 붉은 군대 창립 5주년을 기념한다며 현재 진행 중인 연극의 내용과 연결되는 연설을 했다.
폭풍과도 같은 갈채를 뒤로하고 연극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진행됐으며 트로츠키는 다시 자신의 좌석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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