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데 스틸과의 만남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는 데오 반 뒤스브르크가 주도한 데 스틸과의 접촉을 통해 그의 사상적 입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 구성주의가 20세기 초 유럽에서 행해진 문화혁명의 일환으로 이해되는 데 반하여 데 스틸은 그만한 평가를 얻고 있지 못하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20세기에 노출된 유럽의 도시환경을 가장 시각적인 형태로 보여준 것은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의 입체파가 도입한 콜라주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직관적 인식에 기초하는 콜라주 기법은 다다이즘에 이르러서도 거의 동일한 형태를 유지하면서 계속되었다.


기계기술문명의 발상지인 유럽의 도시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여전히 전통적인 미학체계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기계기술문명의 소산이라 할 수 있는 철골 구조물에 의해 창출되는 새로운 미의식의 등장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나아가서 철도와 자동차라는 2대 교통수단의 발전과 함께 움직임을 동반하는 각종 기계장치가 유럽의 도시와 전원풍경을 바꾸었다.
지상뿐만 아니라 하늘의 풍경에도 비행선이나 비행기가 등장했다.
이것은 동식물 형태에 기반을 두는 유럽의 시각적 문맥 속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요소-기계기술문명의 산물인 공업생산품-가 끼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과 도시로의 인구집중이 가속화되면서 유럽의 대도시는 고도화된 소비환경을 형성하게 된다.
발터 벤야민은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낸 도시 베를린에서 본 것-모든 대상물이 상품화되고 매력적인 장식을 한 쇼윈도가 나열되어 있는 양상-을 유려한 문장으로 남겨 놓고 있는데, 이것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문화와 도시의 해체는 이미 20세기 초엽의 유럽 도시에서 조용하면서도 확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콜라주와 후의 아상블라주(Assemblage)는 이 같은 문명의 상황을 직감한 예술가가 한 장의 타블로(tableau)를 통해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회화라는 예술양식이 지니고 있는 전통적인 문맥에서 콜라주에 의한 구성 또는 이미지의 해체를 제시한다는 것은 일종의 도전이었다.
콜라주에 차용된 대상물이 이미 눈에 익숙해진 상투적인 것일수록 이미지의 해체는 효과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그 중에서도 쿠르트 슈비터스의 ‘메르츠’시리즈는 이 같은 이미지의 해체를 보다 격렬한 방법으로, 또한 다양한 영역에 걸쳐 실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회화적인 ‘메르츠’와 언어나 문자에 의한 ‘메르츠’, 그리고 3차원 상에 구성된 건축적인 ‘메르츠바우’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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