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공간무대’의 구상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공간무대’라는 용어는 1923년 베를린에서 유진 오닐의 <황제 존스>의 상연을 기해서 발행된 프로그램에서 최초로 활자화된다.
키슬러는 지금까지 거론된 적이 없는 ‘공간무대’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해 자신의 무대를 형용하고 있다.
다음날 베를린에서 발행된 신문에는 “‘공간무대’라는 용어자체가 아이러니를 안고 있다.
‘공간(space)’은 ‘무대(stage)’에서는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무대’는 ‘공간’에 의해 형용될 수 없다”4라는 기사가 게재된다.
이에 대해 키슬러는 “무대 위의 공간에서 연기하는 배우에게는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무대 앞에 마련된 객석에 앉아서, 프로세니엄 아치를 통해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에게 있어서 그것은 일종의 부조(relief)에 지나지 않는다.”5라고 반박한다.
다시 말하면 기존의 무대는 배우를 위한 공간일지는 몰라도 관객을 위한 공간은 아니라는 것이다.
키슬러는 <황제 존스>의 무대장치에서 ‘공간무대’의 개념을 실천하기 위해 무대를 보통보다 높게 설치했으며, 무대를 가로막는 커튼 없이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보여주는 방법을 선택했다.
또한 무대바닥을 안쪽에서 전방을 향해 32°높게 했으며, 천장은 후방으로 20° 낮게 했다.
따라서 무대는 관객을 향해 열려진 사각 깔때기 모양을 띠게 되었다.
바닥은 적색, 벽은 흑색, 천장은 흑색과 녹색으로 칠하고, 극의 진행에 따라 조명에 의해 자연스럽게 색의 흐름이 형성된다.
또한 움직이는 소품받침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움직이는 공간조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공간무대’가 실현을 보게 된 것이다.
필자는 <황제 존스>의 무대장치를 키네틱 아트의 선구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경사면을 지니는 사각 깔때기 형태의 무대설계는 1946년 사르트르의 <비상구는 없다>의 무대장치에서 다시 시도되었다.6)
<황제 존스> 무대장치의 의의는 단지 무대디자인의 실험 이상의 것이다.
후에 키슬러는 <황제 존스>의 무대장치에 관하여 “나는 여기서의 실험을 통해 우리가 경험하는 공간은 모든 부분이 중복되는 동적 상황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결코 중단되는 일없이 변화한다.
이에 따라 여기서 나는 ‘연속되는 장력’을 의식하게 되었다”라고 회고한다.
키슬러가 말하는 ‘연속되는 장력’이란 단지 건축적 구조에 주목해서 유추된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 공간의 여러 요소가 중복되는 동적 상황을 의식한 결과 탄생한 것이다.
<황제 존스>의 무대장치는 무대 공간 전체를 일종의 키네틱 아트로 의식한 데 반하여 카렐 차페크의 (1923)을 위한 무대장치는 일종의 움직이는 부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최초로 영화와 텔레비전 영상이 공간연출의 표현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화면의 후방으로부터 영사되는 이른바 프로젝션 기법을 사용하여, 그려진 배경막과 더불어 움직이는 영상이 배경으로 사용된 것이다.
또한 스크린은 일반적인 사각형이 아닌 원형이었으며, 그 주위에는 스틸카메라의 조리개와 같은 장치를 설치하여 화면의 축소 확대가 자유자재로 가능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화재를 우려해 베를린의 소방서가 무대상연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영사장면이 되면 스크린 위에 물을 뿌리기도 했다고 하는데, 물이 흘러내리는 화면효과가 예상외로 효과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또한 사각형의 프레임 부분은 텔레비전 영상을 위하여 마련된 것인데, 실제로는 무대 뒤편에 설치된 거울을 이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