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슬러는 연극과 영화의 특성에 주목하여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서장 「아웃사이더, 키슬러」에서도 언급했었지만 미국의 영화작가이자 평론가 스텐디쉬 라우더는 저서 『입체주의자의 영화 Anthology Film Archives Series 1』(New York University Press, New York, 1975)에서 키슬러의 이 마르셀 레르비에의 영화 <무정한 여자>(1924)에서 보여준 페르낭 레제의 세트 디자인에 영향을 주었으며, 이것이 다시 프리츠 랭의 영화 <메트로폴리스>(1927)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같은 무렵 키슬러는 프랭크 베데킨트의 <프란체스카>(1923∼24) 무대디자인을 담당했을 때 무대 위에 커다란 경사로를 설치하여 입체적 공간연출을 시도했다.
이 같은 아이디어는 후에 모흘리-나기의 <베르린의 상인>(1930)에도 적용된다.
여기서도 1920년대의 유럽에서는 갖가지 혁신적인 표현방법들이 빈번하게 상호 교류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키슬러는 ‘공간무대’ 개념에 기초한 그의 아이디어를 1923년부터 1925에 이르는 3년간 쉴 새 없이 발전시켜왔다.
보다 본격적으로 ‘공간무대’를 실천할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찾아왔다.
1924년 비인에서 개최된 ‘음악연극제’ 건축주임으로 임명된 키슬러는 비엔나 콘체르트하우스 내부에 실물크기의 <공간무대>를 제작한 것이다.
이것은 오케스트라 박스부터 시작되는 나선형의 경사로와 직경 약 6미터의 움직이는 원형무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주위에 객석이 있고 객석 뒤에는 흰색 천이 내려뜨려져 있었는데, 무대배경그림(Scenography) 대신에 영화가 영사되기도 했다고 한다.
<공간무대>에서 키슬러는 ‘무대란 극장건물의 안쪽 구석에 위치하고, 상하좌우와 후면을 폐쇄한 채 전면만을 개방한다’라는 종래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무대를 오디토리움7) 중앙에 발가벗긴 채 놓아둔 것이다.
당시는 <공간무대>를 ‘철도극장’이라고도 불렀다는데, 열차의 조작실에 있는 턴테이블을 연상시키는 무대와 그 위를 빙빙 돌면서 상연되는 모습을 빗댄 것이다.


어쨌든 같은 해 9월부터 10월까지 <공간무대>에서는 실내극이나 댄스 퍼포먼스가 상연되었다.
당시의 신문에는 <공간무대>를 ‘애들립(Adlib)8) 극장’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기사가 게재되기도 했다.
키슬러 자신도 후에 <공간무대>에서의 상연이 전후(戰後)에 유행한 해프닝과 맥을 같이 하는 최초의 예라고 자평했다.
앞서 의 무대장치가 레제의 세트디자인에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라우더의 주장을 소개한 바 있는데, 당시의 <공간무대>를 기록한 사진 중에 키슬러와 레제의 기념사진이 있다.9)


키슬러가 <공간무대>에서 행한 실험이 단지 프로세니엄 아치의 안쪽에 한정되어 왔던 무대개념을 3차원의 공간으로 확장시킨 정도라면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움직이는 무대의 실천 및 주위의 스크린을 영사막으로 이용한 점 등 이른바 원형무대에 대한 새로운 연출기법의 제안 등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같은 해 키슬러는 영화와 연극이 가까운 장래에 서로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앞으로 전개될 연극과 영화사이의 알력은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이상으로 심각한 것이다.
연극의 즉흥성은 메커니즘에 근거하는 영화적 표현에서는 기대할 수 없다.10)
이것은 귀족중심의 개인주의 시대에 대한 혁명적 커뮤니즘과도 흡사하다.
양자 간의 갈등은 어떤 개인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정도로 가벼운 문제가 아닌 듯하다.
아마 그 결말은 시대와 그 시대에 적합한 표현방법에 의해 내려질 것이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맞는 연극형태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목표를 정해보자.
우선 합리적인 제작방식을 택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최대한 경제적인 방법으로 풍부한 내용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의 풍요는 엄격한 수단인 경제적 방법을 고려하는 것으로 가능하지 않았는가.
이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가 명확해졌다.
쓸데없는 부분은 모두 제거하자. 장식은 필요 없다.
아무리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해도 그렇다.
그려진 속임수에 불과한 일루전도 조명도 필요 없다.
진실된 것.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집중력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물의 동향에 모든 주의를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6


키슬러는 연극과 영화의 특성에 주목하여 양자를 통합하는 표현가능성의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공간무대>에서 행한 멀티 프로젝션과 카렐 차페크의 의 무대장치에서 보여준 무대와 영상의 결합 등 그 중 하나이다.
특히 <필름 길드 시네마>(1928-1930)의 설계를 보면 키슬러가 보여준 영상에 대한 관심은 당시의 영화제작자나 감독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진보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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