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도시>를 본 르 코르뷔제는 “글쎄!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는 그로피우스의 <전체극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비판하는데, 천하의 그로피우스도 키슬러의 통찰력 앞에는 비판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발터 그로피우스의 <전체극장>는 앙리 반 데 벨데의 극장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객석의 일부를 회전시켜 서커스 풍의 극장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다. 불행하게도 무대로 사용되어야 마땅한 오디토리움 중앙의 원형부분이 그로피우스의 극장에서는 객석이 되어 있는데, 내 생각에 그것은 배우들의 준비실이어야 했다.
또한 원형 플래폼은 바닥까지 내렸다가 다시 올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이때에 좌석을 떼어낼 수도 붙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공연 중에는 불가능한 작업인 데다가, 이 같은 변화는 관객들에게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를 망설이게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바닥에 내려진 상태에서의 오디토리움은 객석에서 보기에 너무 낮다.
따라서 오디토리움을 플로어의 높이까지 올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한다면 위쪽에 자리 잡은 관객은 공연을 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래쪽에 앉은 관객은 내려다보는 대신에 올려다 볼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어느 경우에도 관객은 공간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게 된다.
관객은 무대 위의 퍼포먼스를 릴리프(relief) 상태로 감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프로세니엄 무대를 향한 시선은 원형무대의 회전으로 인해 방해받을 것이며, 따라서 프로세니엄 무대와 오디토리움은 동시에 사용될 수 없다.
좀더 심각한 문제는 - 이 같은 기능을 충족시키는 무대를 설계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은 차치하더라도 - 이것은 결코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것은 반 데 발데의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구식 무대와 서커스 링의 복합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극장>은 애초부터 정당한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단지 기계적 구조에 집착한 결과 산출된 것으로, 도대체 그 의도를 알 수 없는 인공적인 유니트로 구성된 오디토리움에 불과하다.


제1차 세계대전후 유럽이 누렸던 벨 에포크13)의 시대를 ‘과시’하는 박람회가 1925년 파리에서 개최되었다.
키슬러가 1923년부터 24년에 걸쳐 행한 무대기술분야의 공헌이 평가되어 그랑 팔레에서 개최된 국제장식미술과 현대산업박람회의 오스트리아관 극장부문 감독으로 지명된다.
여기에서 그는 극장부문의 감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도시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 <공중도시 City in Space>라는 대규모의 컨셉 모델을 출품한다.
이것은 그가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스틸의 사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보다 확대함은 물론 보다 명확하게 시각화한 것이다.
데 스틸의 중심인물이었던 데오 반 뒤스부르크도 여기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반면 <공중도시>를 본 르 코르뷔제는 “글쎄! 어떻게 이것을 공중에 매단다는 거야. 제프린 비행기라도 사용한다는 건가?”라고 비꼬았다.
그러나 후에 코르뷔제는 공중에 매달린 건축이라 할 수 있는 <필로디>라는 작품을 제작했다.
굳이 따지자면 ‘최후의 승자’는 키슬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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