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슬러는 <필름 길드 시네마> 설계에 착수했다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건축적 입장에서 보더라도 극장과 영화관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영화관에는 모든 관심이 2차원의 스크린 상에 집중되지만, 극장에서는 3차원 공간의 여기저기로 주위가 분산된다.
이 같은 사실은 영화관과 극장은 전혀 다른 타입의 건축적 구조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정육점과 사무실이 형태와 기능에 있어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사실에 충실한 경우는 없었다.12


이상과 같은 입장에서 그는 <필름 길드 시네마> 설계에 착수했다.
영화 상영을 위한 이상적인 건축물을 계획한 것이다.


영화관은 연극상연을 위한 극장과는 달리 무대의 요소들이 마치 교향악처럼 조화를 이루는 공간의 구성 또는 조직화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
영화관 설계를 위해서는 연극상연용 극장을 연상시키는 모든 사항을 일소시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
영화는 이미 스스로의 상연공간을 가질 자격이 충분할 만큼 성숙해 있다.
따라서 그것은 100% ‘영화의 상연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 시대는 한마디로 ‘광학시대’라 할 수 있다.
어떤 일이든 그 전개속도가 이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빨라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을 신속하게 기록할 수 있는 장치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눈’이다.
눈에 의해 파악되는 속도는 빛은 물론 그 밖의 어떠한 파장보다도 빠르다.


영화는 카메라에 의한 ‘광학적 비행장치’이다.


영화가 ‘표면의 드라마’라면, 연극은 ‘공간의 드라마’이다.
그러나 연극상연을 위한 극장건축에서도, 영화를 위한 그것에서도 이 같은 사실이 구체적으로 고려된 적이 없다.


이상적인 영화관은 ‘침묵의 관(館)’이어야 한다.


연극상연을 위한 극장에서 관객은 배우와 완전한 일체감을 지니고 관객 스스로의 개인적인 존재를 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영화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내가 <필름 길드 시네마>의 설계를 통해서 제시한 것과 같이 영화관의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디토리움의 설계이다.
오디토리움은 관객의 주의력을 집중시키고, 스크린에 몰입하고 있는 관객들에게 종종 발생하는 일종의 구속감을 없애는 데 기여해야 한다.
왜냐하면 관객은 자신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정한 ‘틀’을 지니는 영화 스크린은 ‘엔드리스’ 개념과는 근본적으로 상반되는 것이기는 하나… 13


키슬러는 이 영화관에서 두 가지 새로운 계획을 실현시켰다. 하나는 멀티 프로젝션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관에서 커튼을 제거하고 대신에 그가 고안한 ‘스크린 O 스코프(Screen-o-scope)’라는 장치를 부착한 것이다.
1967년 몬트리올 박람회와 1970년 오사카 박람회를 통해서 널리 알려진 멀티 프로젝션 기법이 키슬러의 <필름 길드 시네마>에서 ‘건축적 형태를 통해’ 세계최초로 실천된 것이다.14)


키슬러는 객석의 정면에 위치한 스크린은 물론 좌우 양 측면과 천장에도 스크린을 설치했다.
또한 <스크린 O 스코프>에는 동공의 개폐와 눈꺼풀의 움직임을 기계화한 것과 같은, 즉 카메라의 노출계와 비슷한 형태의 장치가 있다.
이 같은 영사스크린의 확대축소장치는 1923년 카렐 차페크의 을 위한 무대장치에서 이미 시도된 바 있다.
그러나 에서는 스크린이 영화의 좌우 폭과 상하의 높이를 증감시키는 정도의 역할을 한 데 반해, <스크린 O 스코프>의 경우는 연속적인 이동이 가능한 데다 자유롭게 형태를 바꿀 수 있고 좁게는 1인치 넓이에서부터 어떠한 크기로든 확대 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이 장치는 자동으로 조작 가능하게 설계되었고, 멀티 프로젝션을 감상시키기 위하여 360°회전 가능한 의자가 준비되었다.
뿐만 아니라 조명 및 영상 프로젝션을 위해 30개의 개구부를 만들었다.


그러나 <스크린 O 스코프>는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키슬러의 아이디어가 선구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렇기 때문에 그와 같은 장치를 이용할 수 있는 기술적 노력은 물론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할 작품이 등장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실험적인 극장은 아직도 뉴욕 8번가에 오락관(Play-House)으로 남아 있다.
<필름 길드 시네마>와 <스크린 O 스코프>는 유럽에서 1920년대를 중심으로 전개됐던 축제와 실험의 결과 성숙된 위대한 발상이다.
그러나 뉴욕도 그것들을 수용할 여건을 갖추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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