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무대’개념과 맥락을 같이하는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공간무대’개념과 맥락을 같이하는 이상의 설명에서 <출구 없음>의 무대는 관객을 향하여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한 사각형 확성기와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안에서 연기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여기서 키슬러는 무대의 위치를 영화 스크린 높이만큼 높이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1피트를 높이는 정도에 머무르는 타협안이 채택되었다.
뿐만 아니라 개구부 주위는 검은 천으로 에워싸여 있어서 관객이 무대공간에 의식을 집중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었다.
이 같은 나팔형태의 무대는 1924년 유진 오닐작 <황제 존스>의 무대디자인에서 선보인 바 있다.
따라서 <황제 존스>에서 시도된 ‘공간무대’가 <출구 없음> 무대디자인의 원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출구 없음>에 관한 메모에서 키슬러는 커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보통 무대에서는 커튼의 개폐가 극 내용의 전개와 관련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커튼은 아무것도 연기하지 않는다.
키슬러는 커튼이 열리는 것과 닫히는 것을 단지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의미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커튼은 연기자와 관객 사이를 중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키슬러는 커튼의 개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치 인간의 눈꺼풀과 같이 커튼-딱딱한 벽-이 좌우 양방향으로 갈라지고, 동시에 위쪽의 큰 부분과 아래쪽의 작은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위쪽 덮개는 위쪽으로 올라가 감추어지고 아래쪽의 그것은 오케스트라 피트(Orchestra Pit)의 전방으로 떨어져 사라진다.
결과적으로 프로세니엄 아치가 확대된 듯한 모양을 띠게 된다.
이 안(案)에는 두 가지 좋은 점이 있다.
우선 커튼의 개폐가 대단히 빨라져 무대는 거의 순간적으로 열리게 된다.
두 번째로 아래쪽에 위치한 덮개에 의해 공간이 확장됨으로써 관객과의 ‘접촉’이 용이하다.
주연 배우는 관객을 향해 무대 아래쪽의 통로 앞까지 접근할 수 있다.
또한 연기자와 관객의 경계를 객석 가운데까지 연장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접촉’이란 1920년대를 중심으로 전개된 러시아 구성주의 연극에서와 같이 연기자와 관객이 뒤섞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 무대의 경우 연기자가 원할 경우에만 앞으로 나아간다.
배우가 연기상의 이유로 관객과의 물리적인 관련을 원할 경우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다.
러시아 구성주의 연극에서 볼 수 있는 원형무대에서는 연기자와 관객과의 구분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22

대본의 내용을 살펴보면 여기에서 언급된 공간의 확장 및 축소 가능성을 실천하는 데 <출구 없음>은 적절한 텍스트였음을 알 수 있다.
사르트르의 원작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너희들의 눈꺼풀이 움직이고 있다. 눈을 깜박이고 있는 것이다.
철컥하고 검은 번개가 스쳐지나간다. 막이 내려지고 다시 오른다.
이것으로 단락이 구분된다. 눈앞이 흐려진다.
그리고 세상이 사라진다.…”23

키슬러가 이 구절을 읽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커튼에 대한 이같은 접근방법은 1923년 카렐 차페크의 의 무대장치에서 시도된 조리개 모양의 영사막이나, <필름 길드 시네마>에 설치된 <스크린 O 스코프>의 영사막 확대축소장치와 맥락을 같이한다.
키슬러는 인간이 어떤 사물을 본다는 사실, 특히 동공이나 눈꺼풀의 움직임을 극장이라는 장소에서 극을 감상하고 영화를 볼 때의 상황과 일치시켜 생각했다.
연극이나 영화를 감상하는 행위를 인간이 외계를 보는 행위와 관련시켜 파악하고, 감상한다는 행위 자체를 안구의 안쪽에 비쳐지는 영상을 보는 것과 동일하게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보기 위해서는 개폐장치로서의 커튼이나 확대축소를 가능하게 하는 영사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극장’이란 단순히 건축적 축조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연극상연을 위한 장치를 소장하는 창고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무대와 객석 또는 연기자와 관객이라는 구분을 지니고 있으면서 각각이 항상 연속적인 관련을 지녀야 한다고 키슬러는 생각했다.
건축과 무대, 무대와 객석, 객석과 무대, 그리고 무대와 건축…. 그것들이 서로 간에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 숨 쉬는 공간. 그 안에서 인간이 극적 세계를 체험하는 것.
이것이 키슬러가 간절하게 소망했던 세계였다.
인간에게 극장이란 하나의 우주이며 기억의 중심에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 키슬러.
그에게는 주택도 미술관도 ‘극장’이라는 개념 속에 포함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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