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슬러가 최초로 ‘공간전시’ 개념을 실천한 것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의 작업 중에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거론된 적이 없는 것이 많다.
일정 공간상에 어떤 대상물을 전시하기 위한 개념인 ‘공간전시’도 그 중 하나이다.
키슬러의 전시공간연출로 유명한 것은 남아 있는 몇 장을 사진을 통해 알려져 있는‘금세기 예술’ 화랑에서 개최된 초현실주의자 전람회(1942)의 전시디자인을 들 수 있다.2)
그러나 그가 1920년대 말 뉴욕의 한 백화점 윈도 디스플레이에 관여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거론되더라도 기껏해야 건축가 키슬러의 ‘부업’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는 상업 공간 디스플레이에 대한 이론적 연구실적을 한 권의 책으로 펴낼 정도로 ‘진지했다’.
1929년에 출판된 『현대 쇼윈도와 상점 프론트좭 (Brentano’s)3)가 그것이다.
필자는 당시 백화점이나 상점 디스플레이에 관한 연구가 있는지를 조사한 적이 있으나, 키슬러의 저서처럼 이론적 기초를 갖춘 것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디스플레이에 관한 대부분의 서적이 그러하듯이 경험을 통해 얻어진 방법론을 기술한 정도의 것으로 일본의 카와키타 렌시로우가 가끔 눈에 띨 뿐이었다.
1. 새로운 전시의 시대
키슬러가 최초로 ‘공간전시’ 개념을 실천한 것은 1924년이다.
빈에서 개최된 ‘새로운 극장기술 국제전’의 자료전시를 위한 공간구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전시의 활성화는 1920년을 전후한 유럽의 축제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20세기 조형예술의 성격을 규정하는 갖가지 운동과 프로파간다, 그리고 데몬스트레이션으로 점철됐던 1920년대야말로 ‘전람회의 시대 20세기’4)를 여는 시발점이었다.
미래파, 입체파, 러시아 구성주의, 독일 표현주의, 다다이즘, 데 스틸 등 1920년대의 예술운동들이 유럽 곳곳의 도시에서 얼마나 많은 전람회를 열었던가.
또한 얼마나 많은 데몬스트레이션, 이벤트, 해프닝이 있었던가.
이들 운동에 참가한 멤버들은 유럽 각지에서 빈번한 교류를 가지면서 많은 전람회를 기획했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극화(劇化)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모든 예술가의 의무이다. 새로운 형태의 연출가, 즉 일상생활의 연출가가 태어날 것임에 틀림없다”1라는 에브레이노프의 말이 그대로 실현된 것이다.
러시아 구성주의가 무대예술을 통해서 드라마의 가상세계와 실생활 사이의 벽을 허물었던 것과 같이, 어떤 사상을 선전하기 위해서 마련된 장소라고 할 수 있는 전시장이나 박람회장도 과거와 같이 실내공간에 머무르지 않았다.
도로에 접한 벽면에 대형사진이나 몽타주패널이 설치된다거나 열차의 외벽 가득 혁명을 찬양하는 회화작품이나 그래픽 등으로 메워지기도 했으며, 선박의 선체도 프로파간다의 미디어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