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가 표현방법 상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일상생활에까지 확장시킨 새로운 전시방법의 모색과 더불어 실내공간의 전시방법에 있어서도 새로운 개념이 탄생되기에 이른다.
그 이전까지 실내공간에서의 전시는 유화를 액자 속에 넣어 벽에 걸어 놓거나 조각을 좌대 위에 올려놓는 정도의 방법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액자나 좌대는 예술작품이 건축의 부속물이라는 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하여 스스로가 독립하기 위한 방편을 모색하는 과정의 산물이다.
회화나 조각작품을 건축이나 실내를 장식하는 다른 요소와 무관한 전혀 별개의 것, 이른바 ‘예술을 위한 예술’로 취급하기 위해서 액자라는 틀과 좌대라는 장을 설정하고 그 밖의 사물과 구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미래파의 콜라주는 회화는 유화안료와 캔버스에 의해서만 성립된다는 고정관념을 무의미하게 했다.
회화가 표현방법 상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그러나 회화는 여전히 벽면에 걸린 2차원적 구성이어야 했으며, 따라서 액자라는 틀로부터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1913년 타틀린은 파리의 한 전람회에서 피카소의 콜라주를 본 것이 계기로 회화라고도 조각이라고도 할 수 없는 구성물 <코너 릴리프>(1914-1915)를 제작했다.
이 실험적인 작품은 그 형식에 있어서 그들의 구성주의 운동에 붙여진 명칭인 ‘구성’이라는 개념과 일치하는 것이었으며, 나아가서 공간 활용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도 벽과 벽 사이에 매달려 있다는 전시상황을 통해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흔히 이 작품을 계기로 조각이 어떤 사실의 재현이 아니라 하나의 대상물로서 자립하게 됐으며, 미술이 액자나 좌대라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 작품을 통해서 예술작품을 걸어두는 ‘실내’가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전환됐다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천장, 벽면, 바닥 등의 기호화된 실내가 의미를 상실하고 공간 자체가 강조되기에 이른 것이다.


타틀린의 구성물은 회화작품처럼 벽면에 부속되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조각작품과 같이 좌대에 올려져 있지도 않다.
좌우 양쪽 벽으로부터 지지되도록 계획된 이 작품은 결과적으로 공중에 떠 있는 양상을 띤다.
1915년 마르셀 뒤샹이 천장에 ‘눈 뿌리는 기계’를 설치한 예가 있으나, 타틀린의 경우 공간적 구성을 적극적으로 의식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가 있다.


이 같은 구성주의의 실험을 배경으로 ‘공간전시’라는 개념이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키슬러가 이 개념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게 되는 1924년 이전에 대단히 중요한 두 가지 큰 흐름이 있었다.
그 하나는 1919년에 시작되어 1922년에 『데 스틸』지에 발표된 엘 리시츠키의 유니크한 아이디어와 그것의 공간적 전개이다.
다른 하나는 데 스틸 운동의 사상과 실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구성의 원리.
다시 말하면 몬드리안, 반 뒤스브르크, 리트벨트 등에 의해 추구된 공간구성의 문제이다.
이것을 구체화한 예로 키슬러의 ‘공간전시’를 위치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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