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리시츠키의 ‘프로운’5)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엘 리시츠키는 러시아 구성주의의 멤버 중에서 다른 누구보다도 빈번하게 서구의 아방가르드들과 교류한 인물이다.
레이너 배넘은 그의 명저 『제1기계시대의 예술(1960)2에서 “서구의 건축가들에게 러시아 구성주의를 알리는 대리인 역할을 했던 리시츠키는, 데 스틸 그룹의 멤버들-특히 반 뒤스브르크-에게 그 자신이 얻은 것 이상의 영향을 끼쳤다”고 언급하고 있다.
밴함은 그 증거로 1922년 『데 스틸』지는 거의 대부분의 페이지를 리시츠키의 아이디어를 소개하는 데 할당했으며, 그 밖의 호에서도 그의 그래픽디자인 작업을 크게 게재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소개된 것이 ‘프로운’이며 이 같은 교류를 통해서 리시츠키의 실험적인 작업과 사상이 데 스틸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리시츠키는 1890년생으로 키슬러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또한 리시츠키와 키슬러는 건축가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회화, 그래픽디자인, 타이포그래픽, 사진의 몽타주, 메이어홀트 극장 설계, 각종 전람회의 전시디자인, 박람회의 회장구성 등 시대가 요구하는 다양한 영역에 걸쳐 활동했다는 공통점도 있다.6)
이것만으로도 리시츠키와 키슬러의 유사성 또는 관계를 비교 고찰할 수 있겠으나, 좀더 구체적으로 키슬러가 ‘프로운’이라는 개념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키슬러가 독자적으로 추구해온 개념인 ‘공간전시’의 발전과정을 추적해보기로 하자.


리시츠키가 ‘프로운’ 연구에 착수한 것은 1919년이다.
리시츠키의 부인 소피는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비테브스크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는 물이 새는 작은 방이었습니다.
여기서 리시츠키는 일종의 ‘발견’에 열중합니다.
이것은 새로운 조형세계의 창조를 의미하는 3차원의 기하학적 개념을 표출하는 방법에 관한 탐구였는데, 그는 이 작은 방에서 결국 그것을 완성했습니다.
리시츠키는 이것을 ‘프로운’이라고 명명했습니다.
‘프로운’은 한스 힐데브란트가 생각했던 것과 같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 또는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식의 추상적인 아이디어에 부여된 허풍덩어리의 명칭이 아닙니다.
리시츠는 이 용어를 ‘회화와 건축 사이에 존재하는 인터체인지’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리시츠키의 ‘프로운’중에는 “마을(The Town)”7)이라는 제목이 있는데,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프로운’은 1922년에 베를린에서 개최된 최초의 러시아 전람회에서 공개됐으며 카탈로그에도 삽화와 함께 게재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1919년경 말레비치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한 바 있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것입니다.3


리시츠키는 말레비치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의 인생은 지금 새로운 코뮤니스트의 기초를 형성하는 와중에 있다. 그것은 견고한 콘크리트와도 같이 확고부동한 것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프로운’과 함께 확고부동한 코뮤니스트의 ‘마을’을 건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곳에서 이 세상의 주인이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하여.4”라고 적고 있다.
그 후 ‘프로운’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된다.
1924년 비인에서 개최된 국제음악연극제에서 키슬러가 감독한 ‘새로운 극장기술 국제전’에 <레닌-플랫폼>이 발표되어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기술적으로 보면 외팔보 구조8)로 된 탑으로 코뮤니즘의 심벌 또는 정치적 선전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리시츠키의 ‘프로운’이 전적으로 코뮤니스트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앞서 인용한 『제1기계시대의 예술』의 저자 레이너 배넘은 “러시아어인 ‘프로운’은 영어의 ‘오브젝트(object)’에 해당하는 것이나, 리시츠키에게 있어서 그것은 많은 부차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를테면 몬드리안이 ‘추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와 흡사하다.
‘프로운’은 창조적인 디자인 역사 상 특별한 위치에 있다.5”라고 했다.
리시츠키는 비대상적인 형식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구성물과 구성방식, 그리고 구성이념을 포괄하는 용어로 ‘프로운’을 선택한 것이다.
1919년에서부터 20년에 걸쳐 행해진 ‘프로운’은 어떤 경우에는 구체적인 대상의 재현이 아닌 형태의 조합 또는 그 같은 형태 사이의 관계에 관한 연구이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의사(疑似) 3차원 입체의 공간적 배치에 관한 실험이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프로운’은 회화라고 보기에는 형태의 공간적 관련성을 사고하고 실험한다는 성격이 강하고, 도시계획 설계도의 이미지 스케치 정도로 취급하기에는 비대상회화9)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프로운’은 공간과 형태와 색채의 상호관련 속에서 조형의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목적을 지닌 구조주의적 연구로 평가해야 한다.


1920년 리시츠키는 ‘프로운’개념에 입각한 전시공간의 구성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시사했다.
‘프로운’은 (공간을 제어하는) 형태의 창조이다.
물질을 경제적으로 구성하는 방법 중 하나인 이것은 새로운 가치를 탄생시킨다.6
물질은 구성을 통해서 형태를 수용하게 된다.7


우선 2차원의 평면상에 구성된 공간을 검색한다.
그 다음 그것을 대지(大地)와도 같이 확실하게 저항력이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 위에 우리는 3차원의 공간을 구성할 때와 같은 방법으로 쌓아간다.
이때 각각의 부분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의 장력들 간의 평형을 유지시키는 것이 제일 먼저 필요하다.
여러 가지 힘이 파생시키는 효과를 결합해나가는 ‘프로운’을 통해 새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것으로 ‘프로운’은 더 이상 회화가 아니라 하나의 구성물이 된다.
우리는 이 구성물의 주위를 여러 방향에서 관찰할 수 있다.
위에서 내려다볼 수도, 밑으로 살펴볼 수도 있고, 움직이거나 돌아다니며 감상할 수 있다.
그 결과 수평과 수직을 기본으로 하는 회화의 축이 붕괴된다.
그 주위를 맴돌면서 우리 자신은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8


여기서 리시츠키가 언급하고 있는 내용을 가시적인 구조를 통해 구체화한 것이 키슬러의 ‘공간전시’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