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데 스틸과 키슬러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리시츠키가 ‘프로운’을 최초로 실험한 것은 평면상의 구성을 통해서였다.
데 스틸의 몬드리안도 같은 맥락의 조형관을 지니고 있었으나, 굳이 구분하자면 그는 주로 회화적 실험을 중심으로 실천했다는 점에서 리시츠키와 다르다.
리시츠키의 ‘프로운’은 물질의 경제적 활용을 전제하는 사회의식에 기초하고 있는 데 반해, 몬드리안은 보다 형이상학적인 세계를 기반으로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고려했다.
몬드리안의 회화는 개별 부분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호간의 역학적 균형을 규명하고자 했던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시각현상을 통해서 상호간의 장력이 어떠한 형태로 작용하는가를 파악하고자 했다.
여기서 추구된 균형 또는 장력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간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불가결한 현실적인 요소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몬드리안이 1925년 데 스틸을 떠나게 된 원인 중 하나로 반 뒤스브르크가 대각선 작업을 시작했다는 점을 드는 경우가 있으나, 데 스틸 운동은 시작부터 건축적 구조에 관한 관심이 지대해서 2차원 평면상에 전개되는 회화적인 실험으로는 완결될 수 없는 내용이 많았다.
데 스틸의 주요 멤버 중 한 사람인 게리트 리트벨트는 가구를 자신의 조형세계를 펼치기 위한 대상으로 삼아 공간과 구조에 관한 실험을 계속한다.
특히 1918년과 1919년에 각각 발표된 <적과 청의 의자>와 <싱크대>는 실용적 또는 기능적인 측면을 만족시키면서도 데 스틸의 조형이념에 충실한 것이었다.
수평과 수직을 기본으로 하는 3차원 구조의 사각봉으로 되어 있는 선반도 장력에 의해 힘을 분산하고 있어서 실질적으로도 건축적 규모로 확대 가능한 것이었다.
폴 오버리는 『데 스틸』(Studio Vista, Dutton Pictureback, London, 1969)에서 리트벨트의 <적과 청의 의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논했다.
리트벨트의 <적과 청의 의자>는 수평수직의 검은 색 부분이 의자 전체의 구조적 프레임을 형성하여 지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
경사지게 놓여진 두 장의 판재에 앉은 사람의 중력이 이 지지대에 걸리게 된다.
또한 이 두 장의 판재는 의자가 비어 있을 때에는 그곳에 앉을 사람의 형태가 일종의 심벌처럼 추상적으로 암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의 형상을 연상시키는 대각선의 추상적인 형태는 결국 반 뒤스브르크의 ‘대항구도(counter composition)’이론을 거쳐 다시 한 번 데 스틸의 테마로 부각되게 된다.
이 같은 데 스틸의 새로운 테마는 리트벨트의 의자에서와 같이 각각의 요소가 힘의 균형을 유지시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이나믹한 구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9
여기에서 말하는 ‘대항구도’ 작품이란 1923년 반 뒤스브르크가 코르넬리스 반 에스트렌과 공동으로 입안한 주택모형을 2차원 평면상에 표현한 아이소메트릭(isometric) 도면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된다.
앞의 인용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건축물을 통해 반 뒤스브르크와 반 에스트렌은 리트벨트의 선반과 의자에서 볼 수 있는 3차원의 공간적 구조를 건축적 규모의 구조를 통해 실현하고자 했다.
같은 해에 두 사람은 암스테르담 대학 홀의 인테리어디자인을 하게 되는데, 연속되는 대각선이 창출하는 다이나미즘을 빌어 기존의 상자형 건축의 실내공간을 보다 대담하게 연출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후에 암스테르담 대학 홀의 디자인과 거의 같은 의도를 지니는 공간구성이 시도된다.
1927년 스트라스부르그에 있는 <아우베테 시네마-댄스 홀>(1926-27) 인테리어디자인이 그것이다.
여기서도 벽과 천장에 대담한 대각선으로 된 평면적인 패턴을 이용해 벽과 천장이라고 하는 기호화된 평면을 공간적 연속성 속에 위치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 작업에 대해서 반 뒤스브르크는 “공간상에서 인간의 움직임과 그 흔적은 좌에서 우로, 앞에서 뒤로,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게 되는데, 이것은 건축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로서의 회화작품의 의미를 생각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이다.10”라고 했다.
공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데 주목하자.
이것은 ‘프로운’에 관한 리시츠키의 언급 중에 등장하는 “공간적 구조가 인간의 움직임에 대응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리시츠키는 그것을 “인간이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 간다”는 식으로 표현한 바 있다.
리시츠키와 반 뒤스브르크는 ‘환경적인 공간’10)을 의식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