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기침소리가 울린다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장 아르프는 1949년 『카이에 다르』지에 「키슬러의 달걀과 미신의 방」이라는 논문을 기고했는데, 그 내용을 일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막스 에른스트의 귀여운, 기분 나쁜, 공교롭게 빛나는 아이들이 여기저기로 굼틀거리며 바닥이 없는 호수로부터, 탐식하는 냉혹한 치열(齒列)을 보이고, 막연하게 짙은 녹색이 위협하고, 무한한 증식을 보이며 협박하는 바닥없는 호수로부터, 혼란이나 광기 등, 미신이 나타나, 초크처럼 창백하게 널리 퍼진다.

털 난 한 조(條)의 빛이 방문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철의 기침소리가 울린다.
화석이 된 나날들이 아치 위에서 째각째각 소리를 낸다.
방문객들은 돌연 우주의 망막에 에워싸인다.
살덩어리로 된 레일 위를 죽음의 먹이가 미끄러져간다.
미로의 기호는 별의 살해가 행해진 투우장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혼(魂)의 은하(銀河) 위에 떠있다.
검은 천 가운데에 한 점 구름이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고, 나쁜 세력을 향해 일어선다.
몸을 일으키는 잿더미 속의 해골은 덩그러니 물기도 없이 호수 근처에서 그 두개골을 삼킨다.
십자가, 교수대, 환희, 비탄이 토템 모뉴멘트의 기록이다.17

키슬러가 설치한 검은 천에는 여기저기 찢어진 곳이 있다.
찢어진 곳 중 하나에서는 막스 에른스트의 유크리트가 포도 잎 넘어 송충이의 눈을 하고 우리를 쏘아본다.
그 뺨은 조감해 본 포석( 石)이 있는 광장에 닮아 있다.
유크리트는 촉지(觸知) 가능한 세계의 대용품을 사랑했다.
그는 우리가 육체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과 같이-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으나-하나가 아닌 평야를 산책하고 있다.

초현실주의전에서 키슬러가 정성스럽게 여기저기 걸친 아리아드네실(薩)은 우리를 보다 편안한 삶의 종말로 인도해준다.
인간이 이 세상에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승사람을 자각하는 것처럼 보다 빛이 찬란한 삶으로.18

아르프의 기술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키슬러는 건축과 그곳에 전시된 회화와 조각이 상호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연속되는 전시공간의 연출을 의도했다.
아르프의 산문시는 <미신의 방>의 조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시인의 직감에 의해 파악된 형이상학적 의미를 훌륭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키슬러는 초현실주의와의 긴밀한 교류를 통해서 20세기 문명의 위기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1947년 설계된 <미신의 방>을 계기로 키슬러는 <마술적 건축>선언을 발표하는데, 여기서 그는 바우하우스와 르 코르뷔제 풍의 이른바 근대기능주의 건축의 종언을 선고한다.

건축에 있어서 ‘근대기능주의’는 죽었다.
인간의 육체에 감추어져 있는 신체의 신비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검증하지 않은 채 ‘기능’만을 유일한 생존자로 인식한다면 결국 뜨거운 맛을 보게 될 것이다.
이른바 신비위생(神秘衛生)+심미주의는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다.
(바우하우스, 르 코르뷔제 등)19

나는 위생의 신비주의를 반대한다.
그것은 ‘기능주의적 건축’이 신봉하는 일종의 미신과 같은 것이다.
이와는 상반되게 ‘마술적 건축’이 현실성을 띠는 것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총체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사실과 깊은 관련이 있다.
나아가서 그것은 인간의 축복받은 또는 저주받은 부분 어느 한쪽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20

2년 후 키슬러는 또 하나의 선언 좥상호현실주의 선언좦(1949)을 발표한다.
여기서 그는 ‘엔드리스’에서 <미신의 방>에 이르는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면서 상호현실주의의 사상과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초현실주의자와의 적극적인 교류를 계속하면서 그 자신만의 ‘주의(ism)’라 할 수 있는 ‘상호현실주의’를 완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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