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뒤스부르크는 반 에스트렌과 함께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반 뒤스부르크는 반 에스트렌과 함께 1923년 암스테르담 대학 홀의 실내디자인을 계획했다.9)
이 계획에서 처음으로 현실적 건축공간에 대각선 구성이 등장한다.
이 같은 구성방법은 결국 1927년부터 1928년에 걸쳐 아르프 부부와 공동 제작한 시네마 카페 <아우베테 Aubette>10)에 계승된다.
이 작품에서 주목할 점은 건축공간의 기본적인 기호라고 할 수 있는 바닥, 벽, 천장 등의 수직과 수평적인 요소를 무시했다는 데에 있다.
벽과 천장이 면하는 부분을 무시하고 디자인상의 구성요소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장력에 주목한 공간을 창출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같은 반 뒤스부르크의 실험적인 실내공간의 구성 원리는 기본적으로 리시츠키의 ‘프로운(Proun)’ 및 키슬러의 ‘연속적 장력(Continuous construction)’과 근접한 것이다.
리트벨트는 1925년 라디오 부품이 전부 노출되어 있는 라디오 캐비닛을 디자인하거나11), 기하학적 추상형태를 한 탁상 등을 디자인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1924년 유트레히트(Utrecht)에 건설된 <리트벨트-슈뢰더-하우스>는 그의 대표작 <적과 청의 암체어>에 필적할 정도의 것으로 데 스틸의 조형원리를 건축에 적용한 대표적인 예이다.
이것은 반 뒤스부르크와 반 에스트렌이 자신의 집을 디자인하기 시작한 1927년보다 5년이나 빨리 데 스틸의 공간개념을 실제건축에 적용한 것이다.
<리트벨트-슈뢰더 하우스>의 공간구성은 바우하우스의 실험주택보다 훨씬 더 유연하다.
예를 들어 밖을 향하여 넓게 개방된 유리창은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 같은 사실에서 우리는 <리트벨트-슈뢰더 하우스>가 벽면에 에워싸인 상자형 건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도한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데 스틸의 디자인 활동은 이 밖에도 베르너 그라페의 <오토바이>(1922)안(案)12)이나 빌모스 후자르의 <선전용 키요스크>(1927) 등이 있다.
또한 아우트는 많은 건축물을 설계했으나 반 뒤스부르크나 리트벨트와 같이 데 스틸의 조형원리 실험에 주력하기보다는 ‘국제양식’에 근접한 작업 성향을 보이고 있다.
데 스틸과 바우하우스의 관련은 반 뒤스부르크와 그로피우스 사이의 개인적인 친분을 포함해서 다소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모흘리-나기는 초기의 바우하우스에 결핍되어 있던 조형이론을 보충하는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나기의 역할에 비하면 미미한 것이기는 하나 데 스틸도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서 바우하우스의 디자인에 몇 가지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1920년에 리트벨트가 디자인한 4개의 튜브로 된 램프의 상관적인 구성은 후에 바우하우스 공방에서 제작되어 그로피우스의 방에 걸려 있는 4개로 된 튜브램프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서 바우하우스에 미친 데 스틸의 영향을 좀더 명확하게 증명할 수 있는 것으로 마르셀 브로이어의 <안락의자 B3>(1925)을 들 수 있는 데, 이것은 리트벨트의 <적과 청의 암체어>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어쨌든 유럽에서 디자인에 관한 새로운 개념이 탄생하고 있던 1920년대에 주목해야 할 활동을 전개했던 세 가지 운동이 러시아 구성주의, 바우하우스, 데 스틸이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