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공간주택>의 실현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가 유럽을 떠난 것은 1926년이다. 이 시기에 러시아 구성주의는 조형적 실험기를 지나 사회적 실천의 와중에 있었으며, 바우하우스도 모흘리-나기의 참가를 기폭제로 본격적인 조형이론에 기초한 교육과 바우하우스 제품의 양산에 돌입했다.
또한 프랑스의 르 코르뷔제는 독자적으로 산업사회에 필요한 주택설계를 통해 입체파로부터 파생된 모던 스타일의 건축원형을 제시하고 있다.
뉴욕에 있던 키슬러도 이 같은 유럽의 동향을 주시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피력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의 기본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엔드리스’의 연장선상에 위치하는 건축이론이기도 하다.
키슬러의 건축이론은 ‘국제양식’과 그 이론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근대기능주의에 대한 맹렬한 비난으로부터 탄생했다.
1933-34년 뉴욕의 모던에이지 가구회사(Modernage Furniture Company)의 의뢰로 설계된 <공간주택>을 통해 키슬러는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면서 근대기능주의를 비판하게 된다.
<공간주택>은 키슬러가 설계한 최초의 주택으로, 모델타입이기는 하나 실제로 제작된 것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공간주택>과 같은 주택설계 중 하나인 <엔드리스 하우스>가 아직도 건설되지 못한 채 모형으로만 남아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작품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키슬러는 <공간주택>을 통해 제기한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1. 사회성(the social)
2. 기술성(the tectonic)
3. 구조성(the structural)
<공간주택>의 설계에 구성적 개념을 반영한 것은 단편적인 문제에 불과했다.
그것보다는 사회적 요청에 대해서 좀더 심각하게 고려해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관습이라는 조건으로부터 파생된 가정생활의 한계를 반성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기계적인 노역의 경감을 위한 서비스는 다음 문제이다.
적정한 부모와 자식들의 관계, 남성과 여성의 관계, 어른과 미성년자의 관계에 대한 상호교육을 통해 가족구성원의 개인적 격리를 실현하는 것이 당면과제였다.
그룹을 위한 주택에서의 반 격리.
가족 전체를 위해 외부 세계로부터의 프라이버시 보호.
개인 또는 그룹의 옥외와 옥내에서의 생활방식.8
여기서도 키슬러 특유의 주택에 대한 기본적인 사고방식이 언급되고 있다.
예를 들어 가족을 구성하는 멤버의 사회적 조건으로부터 주택의 개념을 정립하고자 했던 그에게 가사노동의 경감이라는 기능적인 서비스 문제는 일반적인 경우처럼 최우선 과제는 아니었다.
또한 바우하우스와 같이 개인별 ‘방’을 기준으로 분할하는 방법을 부정하고, 그룹으로서의 가족의 삶을 중요시했다.
나아가서 제3자에 대한 가족 전체의 프라이버시를 중시해서 대형유리로 된 개방적인 건축을 부정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르 코르뷔제나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주택설계에서 볼 수 있는 개념과 상반되는 키슬러만의 독자적인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