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뒤스부르크가 1924년 파리에서 새로운 주택건축을 전시했을 때 언급한


몬드리안은 회화의 표현대상영역을 2차원의 평면에 한정하지 않았다.
이 같은 사실은 신조형주의의 이념뿐만 아니라, 그가 보여준 문화전반에 대한 태도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예술 또는 문화의 문제를 특정형태의 문화와 순수관계의 문화로 나누고, 특정의 형태를 다루는 문화보다 순수하게 관계만을 다루는 문화가 대두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모든 ‘자연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모든 특정형태의 지배’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순수한 관계들’을 실현시키게 될 것이다.6


여기에 언급된 내용은 단지 예술상의 주의(ism)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생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예술은 인생의 표현이라는-나아가서 그것에 선행하는 것이라는-사실을 입증해왔다.
따라서 ‘순수한 관계들’은 새로운 인생에 직결된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예술영역에서, 특히 조형수단에 관한 한 실제로 그러한 것과 같이 ‘새로운 인생’을 위해서 우리의 정신이 많든 적든 순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으로 인생은 과거의 예술이 그러했던 것과 같은 방법-개별적인 것들 사이의 순수관계를 달성하는것-으로 점진적인 자유, 진정한 균형 상태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7


몬드리안이 주장했던 ‘순수관계’라는 개념은 키슬러의 ‘상호현실주의’과 대단히 닮아 있다.
이 같은 사실에 대해서 킴 레빈은 「키슬러와 몬드리안 - 생활에의 예술 Kiesler and Mondorian, art into Life」(Art News, 1964)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키슬러는 그의 친구 몬드리안과 함께 세계의 실체 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간에는 많은 ‘관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술은 생활이 되지 않으면 안 되며, 현실은 추상적이라는 사실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몬드리안은 키슬러와 같이 생명력과 유연성을 열망했고 형태에 의한 한계에 저항했다.
나아가서 몬드리안의 ‘연속적 대치’와 ‘동적 균형’은 키슬러가 말하는 ‘연속장력’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개념이다.8


몬드리안은 ‘순수관계’를 실제로 표현하기 위해 회화라는 2차원 공간을 선택할 필요가 있었다.
만약 그가 3차원의 공간을 출발점으로 하는 현실세계의 생활을 직접 대상으로 했다면 아마도 그가 말하는 ‘특정형태’를 다루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순수관계’도 순수한 상태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데 스틸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3차원의 건축적 구성에 대한 관심을 보여 현실적인 공간으로 전개한 데 반해 몬드리안이 그들과 같이 행동할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 뒤스부르크가 1924년 파리에서 새로운 주택건축을 전시했을 때 언급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면, 이것이 키슬러의 갤럭시와 같은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새로운 건축은 대칭적인(symmetry) 구성기법을 이용하지 않고도 동일하지 않은 부분들 사이의 평형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동일하지 않은 부분이란 각각의 기능적 특성에 기초하여, 위치, 크기, 비례, 설정 등이 서로 다른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이 같은 부분들이 이루는 평형관계는 유사성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서로 다른 성질에 의한 것이다.
나아가서 새로운 건축에서는 정면, 뒷면, 우측, 좌측, 위, 아래는 각각이 등가적인 요소를 지닌 것으로 취급한다.9


1918년에서 1924년경에 이르기까지 데 스틸의 중심과제는 좌우대칭에 관한 미학적 탐구와, 구체적인 형태나 장식적인 형태를 배제한 조형이론의 확립에 있었다.
또한 그것은 중심을 상실하고 모든 부분이 해체되어버린 당시의 유럽에 새로운 문화 이념을 확립시키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이같이 회화와 조각은 물론 그 밖의 조형예술에 있어서도 부분들 사이의 관련성을 회복하고 보편성을 지니는 균형 상태를 발견한다는 공통된 목표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유럽의 정치적 경제적 재건을 의미하는 동시에 문화적인 해체상태를 넘어서는 20세기의 문화적 원리에 대한 탐구이기도 했다.
이같이 반 뒤스부르크와 몬드리안, 그리고 키슬러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예술의 목적을 인생이나 생활의 목적과 일치시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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