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조각 ‘갤럭시’
최초의 갤럭시는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 직후 시도되었다.
우연의 일치이겠으나 갤럭시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부활된다.
최초의 갤럭시는 조형적 실험수준이었으나, 이미 논고한 바와 같이 여기서 실험된 갤럭시 개념은 건축을 통해 ‘엔드리스’로 발전되고 ‘상호현실주의’이론으로 논리화되는 등 키슬러의 조형관을 결정짓는 기본 이론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뉴욕에서 활동했던 초현실주의자들과 빈번하게 교류한 키슬러는 그 후 보다 표현적인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키슬러는 몇 개의 전람회장구성을 통해 제2차 갤럭시를 제작했다.
제2차 갤럭시 작품에는 크게 회화에 의한 것과 조각에 의한 것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전자는 주로 벽면에 구성된 것이고, 후자는 바닥, 벽, 천장 등 모든 방향으로 전개된다.
이것은 후에 ‘엔드리스 조각(Endless Sculpture)’ 또는 ‘환경조각(Environment Sculpture)’이라고 불렸다.2)
키슬러가 제작한 최초의 조각은 1947년 파리에서 개최된 초현실주의 국제전에 발표된 <모든 종교를 위한 토템 Totem for All Religions>이다.
이 작품은 현재 뉴욕 근대미술관(MoMA)에 상설 전시되어 있는데, 지난 역사상 인류가 지니고 있던 여러 가지 종교적 상징이 목조에 의해 연속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것은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의 토템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상징을 빌어 종교적인 의미를 담은 갤럭시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후기의 활동 중 최초에 해당하는 이 작품에 나타나 있는 종교적 성격 또는 정신성은 이후 작업의 주된 주제가 되고 있다.
여기에 관해서는 후에 상세하게 논고할 예정이다.
키슬러가 <갤럭시>라고 명명한 최초의 조각작품은 1948년 쥴리어드 음악원에서 상연된 다리우스 미요 작곡, 장 콕도 각본의 <애처로운 수부 Le Pauvre Matelot>의 무대장치 중 하나로 제작된 것이다.
당시의 사진을 보면 무대장치 자체가 대단히 상징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른쪽에는 기둥에 뱀이 감겨있는 듯한 부분이 있고, 위쪽에는 불가사리 형태의 오브제가 띄워져 있다.
조각작품과 같은 무대장치 안쪽에는 배우가 앉아 있다.
또한 1951년에 그려진 갤럭시 조각의 드로잉을 보면 작품 중앙에 한 사람이 편안한 자세로 걸터앉아 있다.
키슬러는 이것을 조각작품으로 발표하기 이전에 작품과 인간과의 관계를 의식했던 것이다.
1952년 뉴욕 근대미술관에서는 이 작품을 포함하는 키슬러의 조각작품이 출품된 15인의 미국인전(Fifteen Americans)이 개최되었는데,3) 당시 『라이프 LIFE』지는 이것을 “살아 있는 조각, 그리고 살 수 있는 조각”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후에 키슬러는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내 친구들이 평한 것과 같이 뉴욕 최초의 ‘환경조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살아 있고 또한 살 수 있다는 것은 조각과 건축이 동의어라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새로운 예술개념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