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원의 조절방법은 사각형 창문에 적용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주간의 빛에 대해서는 또 다른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엔드리스 하우스>에서는 빛을 제어하는 세 가지 기술적 수단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⑴ 필요한 범위를 잘라낼 수 있다.-일반적으로는 창을 열어두는 것에 해당한다-이것으로 외부의 빛이 실내에 침투한다.
우리는 그것을 크게도 하고 작게도 한다.
또한 동그랗게도 삼각형으로도 할 수 있다.
⑵ 빛이 들어오는 구멍이나 통로에 유리나 플라스틱, 또는 반투명의 직물 등을 이용한 확산막으로 빛을 차단시킬 수 있다.
⑶ 빛이 들어오는 구멍은 빛의 강도를 줄여 부드럽게 한다거나, 옆으로 치우치게 할 수 있는 덮개-차양, 지붕창, 덧문 등-을 이용해 감출 수 있다.3
이 같은 광원의 조절방법은 사각형 창문에 적용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러나 키슬러는 창문이 꼭 사각형일 필요가 없으며, 수직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실내공간의 용도에 따라 각체구조의 일부를 잘라내면 되는 것이다.
키슬러의 제안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광선조절방법은 마치 무대조명이 무대공간에서 진행되는 극의 상황에 따라 변화되는 것과 같다.
극장건축가로 일한 바 있는 키슬러의 전력이 <엔드리스 하우스>의 조명계획에 반영된 것인데 여기서 보여준 빛의 제어방법에는 아주 독창적인 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광원 자체에 대해서는 소홀하기 쉽다.
물론 태양광선을 제어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건축가의 손을 거치면 태양광선은 렌즈를 이용해 집중시킬 수도, 그 빛을 구부러진 거울을 통해 반사시켜 확산시킬 수도 있다.
키슬러는 이것을 ‘색채시계’라고 불렀다.
세 가지 색으로 된 프리즘과 같은 수정유리에 외부광선을 통과시켜 여명에서 석양에 이르기까지 천천히 실내공간의 조명을 변화시킬 수 있다.
광선은 우묵한 거울을 통해 실내공간에 이르게 된다.
집 안의 사람들은 자신의 주위에 펼쳐지는 빛의 색을 통해 시간을 짐작할 수 있다.
기계장치에 의해 움직이는 시계는 생활을 분별로 분열시키는 데 반해, 색채시계는 사람들에게 시간의 연속성을 지각하게 한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자연의 힘이 그들의 생활을 활기차게 해준다는 사실을 지각하게 된다.4
이상의 언급에서 우리는 인공 환경과 자연환경과의 상호관계에 주목한 ‘상호현실주의’의 논리가 개입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키슬러는 여기서도 ‘상호현실주의’의 실천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을 한 것이다.
키슬러는 각 방의 채광과 조명방법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예를 들어 생활공간을 위한 커다란 조망창이나, 태양광이 직접 들어오는 어린이 방의 동그란 창, 그리고 침실을 위한 삼각형 개구부 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채광방법은 공간의 기능적인 측면을 고려한 결과 유추된 것이다.
또한 건축가의 공학적 목적이나 미학적 형태에 의해 그 안에서의 생활이 제약받는 일이 없도록 배려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키슬러는 다음과 같은 조명수단을 제시하고 있다.
⑴ 여행하는 광선. 손수레에 실린 비교적 어두운 광원으로 필요에 따라 옮길 수 있는 것.
⑵ 유연한 빛.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빛의 강약을 조절할 수 있는 것.
⑶ 일렉트릭 아이. 살고 있는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밝게도 되고, 어둡게도 되고, 꺼져버리기도 하는 자동제어장치 시스템.
이상과 같은 3가지 조명수단도 연극에서 사용되는 조명을 응용한 발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제안을 마치면서 키슬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들 전부는 실현 가능한 것으로 조명기술전문가에게 의뢰한다면 어느 집에도 설치할 수 있다.
실제로 내가 7년 전 ‘금세기 예술’화랑에서 이 같은 조명수단을 기획의 초기단계에 실시한 적이 있으나 거의 문제가 없었다.
이 조명계획은 <엔드리스 하우스>와 마찬가지로 실제로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키슬러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엔드리스 하우스>의 실현에 동조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엔드리스 하우스>에서 시도된 공간의 연속적인 구성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왔다.
‘월드 하우스’화랑의 설계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