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입체 감옥’으로부터의 해방


드디어 키슬러는 ‘월드 하우스’화랑의 디자인에 착수했다.


매디슨가에 있는 2개층에 연속적인 상호관련을 실천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는 스케치나 계측을 하기 이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도입부’의 공간이 예술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것이 되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곳의 문을 열자마자 예술을 접하게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도입부가 로비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도입부’가 시사하는 것은 의외로 큰 의미를 지닌다.
이것을 위해서 키슬러는 자연환경의 구성요소를 응용했다.


예술-그리고 가능하다면 건축-에 대한 편견 없는 접근을 위해서 예술과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기본적인 간극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방문하는 사람이 들어오자마자 하얀 대리석 섬-중앙 전시 홀의 사각형 공간-에 발을 들여놓게 하는 방법을 통해 그 같은 목적을 성취한다.
이 섬에는 3-4피트 깊이의 수로가 있다.
여기에 그다지 깊지 않게 물이 채워져 있다.
그리고 주위의 벽으로부터 격리된 풀잎으로 덮인 숲이 있다.
여기서부터 2층까지 벽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3면은 그림을 걸 수 있게 되어 있다.
때문에 방문객은 처음에는 작품에 접근할 수 없다.
물리적으로도 그러하며, 격리시키고 있는 수로에서 느끼는 예기치 못한 쇼크에 의해서도 그러하다.
따라서 방문객들은 뒤로 물러나서 우물쭈물하게 되고, 그러고 나서 언제나 그러했던 것과 같이 우뚝 멈추어 서서는 화랑이나 미술관을 둘러보게 된다. 그들은 천천히, 그러나 힘 있게 이미 정해져 있는 패턴이 되어버린 관찰방법에 저항하면서 한동안 쉬게 된다.
이 순간이야말로 상호관련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여기서 키슬러의 설명을 인용하면서 15년 전8) ‘월드 하우스’화랑을 방문해서 처음 하얀 대리석 섬에 들어갔을 때의 경험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가 설명하는 것과 같이 필자는 뒤로 우물쭈물 물러나야 했다.
이 계획의 배후에 이 같은 의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후에 알았지만, 어쨌든 키슬러가 의도한 대로 ‘상호관련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화랑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화랑 내부는 2개 층이 타원형으로 에워싸고 있다. 이렇게 해서 하나로 통합된 공간이 형성된다.
바닥, 벽, 천장이 따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아래층의 바닥이 쌍곡선을 그리면서 위층으로 연결된다.
이것은 다시 위층의 천장과 연결되면서 미끄러지듯 내려오다가 다시 올라가는 듯 하다가 마치 에어 포켓과 같이 갑자기 내려간다.
그러고 나서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고 최종적으로는 아래쪽을 향해 아주 긴 방의 끝에 있는 휘어진 벽에 닿게 되지만 여기서 끊기는 것이 아니라 바닥 옆에 타원형에 에워싸인 흐름의 전부가 집약되는 벤치에 이르게 된다.
부드러운 곡면으로 되어 있는 등받이가 앞쪽으로 튀어나와 있고, 다시 바닥으로 되돌아가 바닥과 동일한 것이 되어있다.
몇 개의 기복을 거친 후에 새로운 기하학적 완결을 보게 된다.
이것으로 마치 깊이 호흡하듯 자연스럽게 예술로 받들어진 모든 영역이 서로 포옹하게 된다.
그 같은 완곡에 의해, 거기에서 발생하는 대비적인 면에 의해, 그리고 잘려내진 포물선에 의해, 물결과도 같은 기복에 의해, 섬세한 결정체와도 같은 기둥의 돌출에 의해 무한한 환영이 형성되는 것이다.9


이 ‘월드 하우스’화랑의 공간적인 특성은 연속되는 곡면에 의해 화랑 각 부분이 총체적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데 있다.
‘엔드리스’의 개념에서 출발하지 않은 공간, 특히 키슬러가 싫어한 사각형 입방체 공간은 설사 연속성에 의거한다 해도 어디까지나 부분에서 또 다른 부분으로의 연속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부분들을 총체적으로 포괄하는 공간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독자들이 이 같은 절대적인 차이점을 이 책에 게재하는 몇 장의 사진을 통해 파악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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