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슬러가 중요시한 작품과 관객의 대응방식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월드 하우스’화랑에는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작품이 전시되었다.
화랑 내부를 찍은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칸딘스키, 미로, 몬드리안, 반 뒤스브르크, 말레비치 등의 선구적인 인물들의 작품과, 마츄, 뒤뷔페, 드 쿠닝, 고르키 등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조각작품으로는 자코메티와 아르프의 부조가 눈에 띤다.
키슬러는 이들 작품을 단지 ‘엔드리스’개념에 입각해 그 자신이 만든 공간에 적절히 전시하는 정도로 생각한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각각 독특한 개성을 지닌 작품들의 상호관련성은 물론 작품과 공간의 관계를 계측해가면서 배치했다.
다시 말하면 그가 말하는 ‘갤럭시’의 개념에 부합하는 조형세계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갤럭시’에서와 같이 각 유니트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과 힘의 관계를 계측하는 방법이 여기에도 사용되었다.
또한 이 계측방법은 예술작품의 배치뿐만 아니라, 작품들을 감상하는 관람자와 작품 사이에도 응용되었다.
키슬러가 중요시한 작품과 관객의 대응방식은 결과적으로 관람구조에 상호관련을 발생시켜 모든 작품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그림을 보는 행위가 유발되고 그 행위에 의해 연속적인 공간이 의미를 지니게 된다.

화랑의 생명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엔드리스’한 것인지 아닌지에 의해 좌우된다.
화가와 조각가의 작품세계와 건축가의 그것이 ‘엔드리스’를 통해 하나의 세계로 통합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창조적인 예술가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결코 끝나는 일 없이 계속되는 상호관련의 주기이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어서 화랑이라는 공간 또는 장소는 예술가의 작업과 그것의 잠재적인 연인과의 사이를 혹성의 체계와도 같이 연속적인 관계로 만들어주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여기에 다시 ‘연속장력’이 작용하여 아주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결혼 후 평화가 성취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 귓가에 들려온다.13

‘월드 하우스’화랑 완성 후 키슬러의 작업은 점점 소수의 이해를 얻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루살렘 언덕 위에 지어진 <바이블 성전>도 그 중 하나이다.
이것은 「사해사본」를 소장하기 위한 일종의 박물관으로 키슬러가 설계하여 실제로 건설된 유일한 독립 건축물이다.
한편 1955년경부터 시작한 환경조각이 아틀리에에서 발전되고 있었다.
또한 <유니버설 극장>의 설계와 모형제작이 1959년부터 착수되기도 했다.
1960년을 고비로 다양한 영역에 걸친 키슬러의 활동이 발표 시기를 맞게 되었다.

특히 뉴욕 근대미술관이 의뢰한 <엔드리스 하우스> 설계와 모형제작의 결과가 1960년 9-10월에 걸쳐 개최된 ‘환영적 건축전’전에 출품되었다.
이때 발표된 커다란 모형을 통해 <엔드리스 하우스>의 실내 공간 양상을 어느 정도까지는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여러 각도에서 찍은 <엔드리스 하우스> 사진이 이 ‘환영적 공간’의 특징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사진이 전달하는 비일상적인 인상은 <엔드리스 하우스>가 본래 지니고 있었던 의미를 축소시켰다.
같은 시기에 제작된 <엔드리스 하우스> 도면을 보면 이 모형의 공간이 현실적으로 시공 가능한 기술적 배경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드리스‘ 개념에 입각한 건축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그의 일기이며 내면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엔드리스 하우스‘의 내면』을 보면 몇 번이고 <엔드리스 하우스> 건축의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키슬러는 이번이야말로 실제로 건축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전부 도중에 중단되고 말았다.
만년의 그의 활동을 보면 이미 완성된 체제를 정면에서 부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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