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리스 하우스> 최종안이 탄생된 것이다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1958년 D. S. & R. H. 고테스만 기금의 후원을 얻은 키슬러는 뉴욕 근대미술관에 건설된 <엔드리스 하우스>의 설계도와 모형제작에 착수했다.
실제 건설을 위한 기술적 연구를 거친 이것을 계기로 <엔드리스 하우스> 최종안이 탄생된 것이다.
이 최종안은 1960년 9월 27일 뉴욕 근대미술관이 기획한 환영적 건축전을 통해서 발표되었다.2)
전람회가 열리기까지 만년의 키슬러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엔드리스 하우스> 최종안의 발표는 키슬러가 생애를 통해 일관되게 추구한 ‘엔드리스’의 개념을 집대성하는 마지막 무대였다.
작품발표에 이르기까지의 도정을 살펴보면 당시 뉴욕 미술계의 동향과 키슬러 개인의 입장 등을 알 수 있는 몇 가지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다.
키슬러는 ‘월드 하우스’화랑 주인 허버트 메이어로부터 그가 소유한 코네티컷의 부지에 <엔드리스 하우스>를 9월 20일까지 지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동시에 <엔드리스 하우스>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월드 하우스’화랑에서 키슬러의 작품전을 열고 싶다는 제의를 받았다.
같은 시기에 뉴욕 근대미술관도 미술관 정원에 <엔드리스 하우스>를 건설할 계획이 있었다.
미술관에는 이미 건물 신축계획이 있어서 약 2천만 달러의 자금이 필요했다.
이를 위한 자금마련에 전전긍긍하던 미술관에서는 키슬러의 <엔드리스 하우스> 건립을 위해 필요한 10만 달러를 따로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결국 계획은 무산되었다.
이 시점에서 허버트 메이어로부터 의뢰가 있었으므로 키슬러는 뉴욕 근대미술관 자문위원회의 멤버인 친구의 조언을 얻어 <엔드리스 하우스> 건설 여부에 대한 결정을 주요골자로 하는 편지를 썼다.
해가 가기 전에 건설을 완료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기였다.
이듬해에는 <엔드리스 하우스>가 들어설 부지에 미술관측은 새 건물을 지을 예정이었다.
따라서 해가 지나기 전에 건설을 서두르지 않으면 미술관 정원에 <엔드리스 하우스>가 지어질 가능성이 없어질 상황이었다.
키슬러는 이때 “그 동안 겪어왔던 일이 다시 반복되는 것인가? 아니면 아직 기회가 남아있는 것인가?”라고 적고 있다.1
그에게는 항상 낙관할 수 없는 어려움이 같이 했던 것이다.
뉴욕 근대미술관의 친구는 키슬러에게 미술관측에 문의한다면 금방이라도 허버트 메이어를 위한 <엔드리스 하우스>를 건설해도 좋다는 지시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러나 다음날 전화가 걸려와 어젯밤 뉴욕 근대미술관의 직원과 만나 이야기를 한 결과 ‘월드 하우스’화랑에 기회를 넘겨주는 것은 미술관으로서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면서, 미술관에서는 아직도 <엔드리스 하우스> 건설을 희망하고 있으므로 ‘월드 하우스’화랑 측에는 편지를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