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슬러에게 ‘건축’이란 무엇이었는가?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지금까지 키슬러가 빈에서 최초의 ‘엔드리스’를 구상한 1924년부터 1965년 생애를 마감하기 직전까지 제작했던 환경조각 <우리, 너, 나 Us, You, Me>에 이르기까지 시대 순으로 살펴보았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20세기 중에서도 변혁기에 해당한다.
그 와중에도 키슬러의 컨셉은 변하지 않았다.
물론 접근방법에 관해서는 시대에 따라 각각 중요한 전환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점에 주목하여 시대 순으로 살펴보는 통시적 연구방법을 택했는데,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키슬러의 활동영역 전체를 부감해보고 그가 남긴 사상 및 작업의 개요를 만들어보는 것으로 키슬러에 관한 연구의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1. 개요Ⅰ - 키슬러에게 ‘건축’이란 무엇이었는가?
건축이란 무엇인가?
키슬러에게 이 같은 질문을 한다면 그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아마도 그 대답은 ‘엔드리스’에 대한 설명과 일치할 것이다.
키슬러의 건축은 각체(殼體 Shell)구조를 띠고 있다.
각체구조는 공간의 ‘연속성’을 통해 ‘엔드리스’개념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연속성’에 의한 건축을 제안했던 또다른 인물로 키슬러와 같은 유태인 건축가 버크민스터 훌러를 들 수 있다.
훌러도 키슬러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건축구조를 부정하고-<다이맥션 하우스 Dymaxion House>로부터 ‘훌러 돔(Fuller Dom)’으로 통칭되는 <지오데식 돔 Geodesic Dome>에 이르기까지-연속구조체에 의한 쉘터(shelter)를 제안해 왔다.
훌러의 건축은 장력(Tension)과 압력(Compression)이라는 구조역학상의 원리를 극단적으로 추구한 결과물이다.
훌러는 구형(求型) 조인트와 그것들을 연결시키는 바(bar)라는 두 종류의 유니트를 개발했다.
그것들의 연속적인 결합에 의해 자유자재로 쉘터의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훌러 돔’으로 대표되는 그의 작품은 ‘기술적 발명’에 의한 개가이며, 일정 원리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보면 바우하우스를 출발점으로 하는 국제양식의 패러다임과 같은 맥락에 위치시킬 수 있다.
그런데 훌러의 이 구조가 ‘기술적 발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장력과 압력과 같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는 점보다는, 건축을 독립된 구조물로 인식하지 않고 인간을 에워싸고 있는 기술적 쉘터의 하나로 파악했다는 데 있다.
훌러는 인간을 에워싼 모든 쉘터는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 효율이 높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훌러 돔은 최소의 재료로 최대의 구조적 강도를 지닌 구조물을 추구한 결과물로 볼 수 있다.
훌러는 상자형의 비효율적인 건축을 양산하는 근대기능주의 건축의 동향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같은 돔형의 건축을 목표로 했으면서도 키슬러와 훌러 사이에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있다.4)
훌러가 기계기술에 관해 낙관적인 입장을 취한 것은 기계기술의 본질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반면 키슬러는 기계기술보다는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에 주목하여 근대기능주의를 비판했다.
또한 훌러 돔은 기술적으로 완결된 상태를 지향하면서 완전에 가까운 구형을 달성한 데 반해 키슬러의 돔은 불완전한 구형으로 발전된다.
키슬러는 기술적인 점을 고려한 이상적인 형태가 삶의 표상이 되는 건축을 일차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완전한 쉘터’를 추구했다.
그는 기능을 일차적 목적으로 삼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도외시하지도 않았다.
대신 ‘바이오테크닉’을 사고의 중심에 놓았다.
왜냐하면 건축이라는 것은 그곳에 살고 있는 인간의 일상생활을 기준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며, 다양한 인간의 일상생활에 부응하는 복잡한 구조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