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건축도 하나의 비즈니스였다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의 각체구조는 기술적 요구에 부응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사는 인간의 의식이나 정신세계의 변혁을 촉진시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의 결과물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중요시했다.
이 때문에 <엔드리스 하우스>가 사람들의 호기심의 대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도 실제로 건조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아마 새로운 것을 수용하면서도 사상적 가치기준에 대해서는 보편적인 획일성을 추구하는 미국인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엔드리스 하우스>처럼 바닥, 벽, 천장이 연속되어 있는 주택에서의 생활은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건축도 하나의 비즈니스였다. 따라서 건축가들은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따라 건축을 설계하는 것이 ‘프로다운 일’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대해서 키슬러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도덕적인 문제는 그들에게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경쟁력 향상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예술성과 상업성의 관계에 관한 도덕적 질문은 건축가에 관한 한 전혀 쓸모없는 어필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그것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난 이야기다.
그것을 다시 들추어내는 것은 건축가의 전략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1


키슬러가 건축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윤리적 생활철학의 회복이었다.
나아가 ‘건축을 위한 건축’ 또는 ‘건축가를 위한 건축’이 아니라, 언제나 ‘거주하는 사람을 위한 건축’에 주목했다.
기존의 건축을 거주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재고해본 키슬러는 기존의 건축가들이 생각하고 있는 건축에는 거주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따라 키슬러는 거주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새로운 건축개념을 정립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그의 기본개념인 ‘엔드리스’도 이같은 ‘건축에 관한 새로운 개념정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새로운 개념을 구조적으로 성립시키기 위한 것이 각체구조이며, 그 안에서의 생활에 필요한 기능을 고려하여 설계된 것이 <엔드리스 하우스>이다.


따라서 <엔드리스 하우스>에서 ‘결과적으로 보여지는’ 구조나 형태상의 특징이 논의대상이 되는 것은 키슬러에게 의외였을 것이다.
그가 주목했던 것은 결과적으로 그같은 형태를 띨 수밖에 없는 그의 건축개념이다.
또한 그 같은 개념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실의 배후에는 그의 윤리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인간생활에 관한 깊은 사고 없이 단지 건축의 실용적 기능에 주목했던 20세기 건축의 긴 역사를 키슬러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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