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키슬러는 생각대로 작업할 수 없었다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필자는 20세기를 성격 짓는 기계미는 서커스에 집약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서커스의 특징은 기계적 연기가 지니는 추상적인 성격, 운동의 다이나미즘과 속도감, 관객이 집단으로 흥분할 수 있는 장소, 그리고 이동 가능한 가설무대 설치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같은 특성은 전후에 전개된 20세기 미술, 예를 들어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Mobile), 피터 브룩의 셰익스피어 극, 해프닝, 이벤트 등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연기는 완벽하게 현실을 재현해내야만 하는 것임에 반해 서커스 연기는 불완전한 것이 보통이다.
지금까지 논고한 추상적이며 기계적인 성격과 파괴적인 속성과 서커스 연기자의 역할에서 엿볼 수 있는 트릭스터(trickster)7)와 같은 특성은 전혀 상반되는 것이다.
이것 또한 20세기 예술이 지니는 또 하나의 특성과 일치한다.
다다에서 초현실주의에 이르는 반기능주의적 경향이 그것이다.
키슬러가 살아온 도정을 살펴보면 그의 생애의 전반기는 당시 유럽을 풍미했던 기계미학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원리를 추구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데 스틸에 참가했다는 사실이 그것을 입증한다.
유럽의 전위연극기술을 미국에 전하기 위하여 뉴욕 부두에 도착한 1926년 키슬러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가능성에 많은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키슬러는 생각대로 작업할 수 없었다.
오히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망명한 바우하우스의 예술가들이 미국 건축계의 주도권을 쥐었다.
근대기능주의에 대한 비판을 계속했던 키슬러는 결국 아웃사이더로 전락하고 말았다.
기계기술문명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분명히 미국은 유럽에는 없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달러를 내세운 고도의 자본주의체제는 키슬러의 깊은 사상을 수용할 수 없었다.
오히려 경제적인 이유에서 바우하우스의 이념을 구체화하는 거대한 마천루 건축이 증식해갈 뿐이었다.
이것은 나치가 기계미학을 이데올로기 선전용으로 이용했던 것과 다를 바 없다.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에 필적하는 경제적 이데올로기를 배경으로 구성주의와 바우하우스, 그리고 국제양식이 보급된 것이다.
키슬러가 격은 비극적 생애는 활동무대를 미국으로 옮기면서 정도를 더했다.
후반기의 키슬러는 초현실주의와의 접촉으로 인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는데, 이것은 초현실주의 운동이 목표로 했던 상상력의 회복과 신화의 재인식이라는 기본 취지가 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1947년 초현실주의 국제전의 <미신의 방> 전시디자인 이후 키슬러는 건축과 디자인, 그리고 극장작업 이외에도 조각에 이르기까지 활동영역을 확대했다.
뿐만 아니라 말년에 보여준 ‘보이지 않는 연극’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내면세계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말년에 이르러 키슬러는 20세기라는 역사적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서 시공을 초월하는 우주적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키슬러가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던 상상력이 구체적인 비전을 지니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키슬러의 전 생애를 조망해보면 그가 ‘세계(cosmos)’를 꿰뚫어보는 우주적 상상력의 선지자였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키슬러에 관한 오해와 그를 거부하는 행위는 결국 우주적 상상력의 선지자 키슬러의 시각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끝으로 키슬러에 대한 모든 오해는 유명한 미술평론가 케네스 클라크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해 언급한 내용에서도 이유를 찾아 볼 수 있다.
그것을 인용하는 것으로 키슬러라는 미지의 인물에 관한 추적을 마치고자 한다.
그는 항상 모든 위대한 인간은 단순하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왔던 인물이다.
그같이 복잡하고도 신비스러운 성격의 소유자는 좀처럼 찾아 볼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그의 모든 활동을 요약 또는 단순화시키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사실 자체가 애초에 그가 지니고 있던 가치관 또는 세계관에 반하는 것임에 틀림없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