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키슬러와 영화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가 빈에서 상영한 4개의 필름은 모두 1920년대를 대표하는 전위영화의 수작들이다.
이 같은 사실에서 우리는 키슬러가 영화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키슬러의 영화에 대한 관심을 키슬러 부인은 앤디 워홀의 작품을 예로 들면서 설명한 바 있다.
부인에 의하면 만년의 키슬러는 워홀의 영화를 보고 그가 대단히 정열적인 필름 제작자 중 한 사람이며 이른바 전문가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종합예술가로서의 측면을 지닌 인물이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당시는 워홀이 영화를 처음 만들기 시작하던 시기로 아직 누구도 워홀의 영화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던 때이다.
키슬러는 8시간에 걸친 워홀의 영화를 감상한 이유를 부인 이외의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건축가였으며 무대디자이너였던 키슬러와 영화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그가 영화를 보는 환경 또는 영화와 연극의 융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등의 사실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프로모터로서의 활약상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번에 발견된 두 개의 필름은 키슬러에 관한 새로운 연구방향을 제시해준다.
어쨌든 키슬러 자신이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자료가 몇 가지 더 있다.
금번(1978년 2월 20일) 미술출판사에서 출판된 필자의 『환경예술가 키슬러(環境藝術家キ-スラ-)』의 연보를 작성하기 위해 키슬러 부인으로부터 받은 자료 중에 들어 있는 계획안도 그 중 하나이다.
파리의 매그 화랑(Galerie Maeght)에서 열린 국제 초현실주의전의 <미신의 방>을 설계하기 위해 파리에 체제하고 있던 1947년에 키슬러는 자신의 각본에 의한 영화 <크리스마스 트리 Christmas Tree>의 제작을 검토했다고 한다.
그는 영화작가 루디 버그하트에게 이 영화에 사용될 많은 스틸 사진의 촬영을 부탁했다.
뉴욕에 돌아온 후에도 버그하트를 도와 영화의 몇 장면을 촬영했다.
필자는 아직 보지 못했으나 키슬러의 각본과 버그하트가 촬영한 장면은 현존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한편 『환경예술가 키슬러』를 위해 보내온 키슬러 부인의 우편물에는 그녀의 헌사와 키슬러가 적은 짧은 문장이 동봉되어 있었다.
그것은 1957년 키슬러와 바토스가 설계한 ‘월드 하우스’화랑을 위한 영화의 각본에 등장하는 시의 일부분이었다.3)
아마도 이 ‘월드 하우스’화랑을 테마로 영화를 제작할 계획이 있었던 듯하다.
키슬러와 영화의 관계는 앞으로 연구해야 할 중요테마 중 하나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