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시각상(像) 조작용 기계장치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는 대상물의 기록수단으로 탄생한 사진기술, 사진이 움직이는 영상으로 발전된 과정, 그리고 오늘날의 텔레비전 등에 이르기까지를 연속된 기술적 진화로 파악하고 연구했다.
같은 무렵 실험예술가 모홀리-나기도 영화, 사진, 포토그램 등 영상매체를 중심으로 하는 조형적 실험을 행한 바 있다.
키슬러의 경우 장치의 구조에 좀더 주목했다는 데서 모홀리-나기와 구별되는 특징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유명한 ‘광선소품(Light Prop)’<빛-공간조절기 Light-Space Modulator>(1921-30)의 경우를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모홀리-나기도 기계장치에 관해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사진기, 영화용 카메라, 영사기 등의 원리에 관해서는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에 반해 키슬러는 그것들을 기계기술의 연속적인 진화과정과 그 과정에서 발명된 기술적 성과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물론 그뿐이라면 단지 사진기술 또는 영화기술의 전문적인 범주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키슬러는 단지 특정 기계의 기술적 발전과정의 연구뿐만 아니라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인 스크린에 이르기까지도 기술적 측면에서 취급했다.
여기서 우리는 독자적인 디자인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디자인 상호관련을 논리화했던 작가 키슬러다운 면모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같은 연구 중 일부분이 1937년 그 밖의 논문과 함께 『아키텍추얼 레코드』지에 발표되었다.
이 논문은 두 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타이틀은 「디자인 상호관련;빛을 이용한 디자인(포토그라피)의 기원에 관한 명확한 자료」이다.9 4)
여기서 우리는 키슬러가 ‘사진술(Photography)’을 ‘빛을 이용한 디자인(Design by Light)’이라는 말로 바꾸어 부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모홀리-나기도 ‘빛의 디자인’ 또는 ‘빛의 디스플레이’에 관한 실험을 행한 바 있다.
그들이 활동했던 1920년대는 지금처럼 용어가 다양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다양한 장르에 걸친 실험을 통해 피력할 수 있었다.


이 논문에는 위와 같은 삽화가 실려 있다. 이것은 사진의 원리에 의한 이미지 기록수단의 발전과정을 도식화한 것인데, 우선 왼쪽에 그려져 있는 인간의 모습과 안구가 그려져 있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오른쪽에도 인간의 모습이 투명한 케이스에 들어가 있는 그림이 있다.
이 삽화의 제목은 ‘보다 고도로 이미지를 영속적으로 기록하기 위한 수단,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왼쪽에 그려진 인간의 눈을 통과한 이미지가 망막을 자극한다.
그리고 변환된 망막상의 그림(기록)은 두뇌에 기록된다.
이에 반해 사진으로 촬영된 대상물의 이미지는 인화지에 프린트되어 정착된다.
그리고 키슬러의 삽화에 의하면 인화지에 정착된 이미지는 튼튼한 선반 위에 잘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오른쪽에 있는 그림은 예술의 영원한 기록방법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미지가 예술작품으로 변환될 경우 보다 확실하게 보관하기 위한 방법을 나타내고자 했다고 생각된다.
필자에게는 이것이 홀로그래피(holography) 등의 3차원 사진을 말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물론 이것이 타당한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키슬러가 여기서 제시하고자 했던 것은 이미지의 기록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예술의 영속적인 기록을 위해 홀로그래피와 같은 수단을 생각했으리라는 예측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삽화 밑에는 「사진-기록의 발전」이라는 도표가 실려 있다.
이것은 사진이라는 수단에 의해 상(像)이 기록되는 과정을 나타내는 것인데, 특히 수요가 많아진 경우를 고려하고 있다.


키슬러는 10페이지에 달하는 이 두 편의 논문을 통해 인간역사상 등장했던 사진, 영화, X선 사진, 텔레비전 등에 관한 데이터를 간단명료하게 체계화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는 ‘사진과 건축’이라는 소제목이 있다.
여기에는 시네마스코프 풍(風)의 멀티스크린과 같이 배치한 3장의 사진이 실려 있다.
하나는 19세기 말 벽면장식으로 사용된 사진의 예를, 가운데에는 20세기 초 사사분기의 예로 그 자신이 설계한 <필름 길드 시네마 Film Guild Cinema>(1927-29)를 싣고 있다.
세 번째 것은 20세기 중반을 지칭하는 것인데, 키슬러는 이 그림에 관해 ‘텔레비전을 이용한 이동장치가 생겨나고, 동시에 쉘터 구조와 결합된 빛의 통합이라는 새로운 방법의 탄생’을 나타낸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미 키슬러는 1920년대부터 텔레비전과 같은 영상의 원격전달장치에 주목하여 카렐 차페크의 (1923) 무대디자인에 거울을 이용한 영상이미지를 실험적으로 이용했고, 1928년 미국에서 의뢰받은 새로운 미술관 구상에서는 영상의 원격전달기능을 이용한 ‘가정(家庭) 미술관’을 제안했다.5) 뿐만 아니라 1929년을 전후해서 키슬러는 백화점을 필두로 하는 상업공간디자인을 다수 담당했는데, 이때 윈도 디스플레이 기법의 하나로 텔레비전을 이용한 뉴스 방영을 구상한 바 있다.


사진원리에 관한 키슬러의 관심과 영상매체의 장래 등에 관한 예상은 이후 그의 작업에 다양한 형태로 반영된다.
그 중에서도 여러 번에 걸쳐 대두되었던 테마가 있다.
키슬러의 독자적인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각적 환경의 연출을 위한 장치’가 그것이다.
이 장치의 원리에서 우리는 키슬러와 뒤샹의 공통점을 찾아 볼 수 있다.
두 사람의 이단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는 달리 의외로 가까운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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