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키슬러와 <큰 유리>6)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와 뒤샹이 뉴욕에서 어떠한 교류를 가졌는지, 특히 언제부터 교류가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키슬러와 뒤샹의 연보를 대조해보면 두 사람 사이에 몇 가지 접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뒤샹이 캐서린 드레이어, 만 레이와 함께 창설한 무명사회 주식회사(Soci럗 Anonyme, Inc)는 1920년에서 1929년까지 각종 전람회, 출판활동, 모던아트 계열 작품의 컬렉션 등의 활동을 하면서 미국 현대미술의 선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슬러는 미국으로 이주한 1926년 무명사회주식회사의 의뢰를 받아 새로운 미술관을 디자인했었다.
그렇다면 키슬러는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뒤샹, 드레이어 부인과 교류를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뒤샹의 <큰 유리>(1915-1923)는 1915년 그가 뉴욕의 링컨 아케이드 빌딩(브로드웨이 1947번지)에 이사한 후 두 장의 유리를 구입한 것을 시작으로 구체적인 제작에 돌입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후 뒤샹은 거처를 여기저기 옮겨 다니게 된다.
이 사이에도 뒤샹은 <큰 유리> 제작을 계속했다.
<큰 유리>는 1923년까지 전년에 다시 이사 온 링컨 아케이드 빌딩의 아틀리에에 미완인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물론 이때까지 키슬러는 유럽에 머물러 있었다.
1926년 키슬러가 뉴욕에 도착한 해에 무명사회 주식회사가 주최하는 근대예술국제전(International Exhibition of Modern Art)에 출품되었던 <큰 유리>가 전람회가 끝나고 운반 도중 포장된 채 유리가 깨졌다.
그러나 수년 후 포장을 열어보기 전까지 누구도 그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1930년까지 방치되었다.
뒤샹의 연보를 보면 1936에 이르러서야 코네티컷 주 웨스트 레딩의 캐서린 드레이어 여사 집에서 <큰 유리>의 수복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키슬러는 그 이듬해, 즉 1937년 『아키텍추얼 레코드』지 5월호에 발표한 디자인 상호관련논문에 이 <큰 유리>를 거론하면서 사진을 게재했다.
이 논문에 실린 사진은 베레니스 아돗트가 특별히 이것을 위해 그해 겨울 집필자인 키슬러와 함께 드레이어 여사의 집에서 촬영한 것이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키슬러의 논문에 게제된 <큰 유리>의 사진은, 특히 정밀한 부분사진은 이 작품이 우연한 사고로 깨진 후 일반에게 공개된 최초의 사진이 되는 셈이다.
키슬러의 논문 첫 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다.
건축은 공간을 제어하는 것이다.
이젤 회화는 ‘공간-현실’의 일루전이다.
그런데 뒤샹의 유리는 공간에 존재하는 최초의 X선 회화이다.10
이 초(超)-정기(正氣)의 우상파괴자 마르셀 뒤샹의, 유리 위의 구조회화 11
대단히 짧지만 우리는 키슬러가 <큰 유리>의 본질을 적절하게 지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는 <큰 유리>를 ‘공간에 존재하는 최초의 X선 회화’라고 명명하는데, 이것은 이 신비로운 작품 <큰 유리>가 담고 있는 관념을 이해하기에 급급한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한 번 이 작품이 지니는 공간적 존재로서의 의미에 주목하게 하는 언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