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유리>에 관한 논문에서 키슬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의 관심은 이 작품의 조형적 구조에 있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공간상에 작품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느냐에 있었다.
다시 말하면 캔버스에 그려져 있는 회화는 어디까지나 공간 또는 현실의 일루전인 데 반해 <큰유리>는 유리 위에 그림이 떠 있는 상태라는 점이 키슬러의 주의를 끌었다.
공간을 사고의 중심에 두고 건축이나 조형물의 상호관계에 주목했던 키슬러에게 <큰 유리>는 대단한 흥미로운 대상이었다.


키슬러는 이 <큰 유리>를 ‘X선 회화’라 불렀다.
그는 그 이유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다.


빌헬름 콘라드 뢴트겐은 처음으로 인간이 제어하는 비가시광선을 X선이라고 명명했다.


1896년에는 비인의 요셉 마리아 에델이 최초의 X선 사진을 촬영했다.
카메라의 눈이 신체의 가시적 표면 안쪽에 침투해서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심부(深部)를 기록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사진건판에 사용하는 보통의 감광제로도 이 비가시광선을 정착시킬 수 있었고 그 결과 항구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비가시광선이 사진술(포토그래피)에 의해 비가시물체를 기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표면사진밖에 찍을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X선 장치는 일반화되었고 오늘날에는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12


키슬러는 이 X선에 의해 인간의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물체, 다시 말하면 표면의 밑이 가시화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큰 유리>에 관한 논문에서 키슬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세기의 위대한 대가의 작품, 피카소, 미로, 달리, 그 밖의 X, Y, Z들은 모두가 추상, 구성주의, 현실, 초현실주의 등의 명패를 달고 있다.
그러나 이 <대형유리>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큰 유리>는 우생학적(優生學的) 결과물이다.
그것을 20세기 최초 4반세기의 최고 수작이라고 단언해도 무방하다. 결코 속단이 아니다.
그것은 건축이며, 조각이며, 회화이면서 동시에 독자적인 무엇이다.


공간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이 같은 ‘X선 회화’를 창조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
초점이 맞고, 때묻지 않았으며, 카메라 옵스큐라 역할을 하는 인간의 의식을 넘어서는 존재. 그리고 감광력과 감광시간이 필요하다.
<큰 유리>는 그것들의 종합에 의한 빛나는 성과를 얻기 위해 깨진 것이다.13


키슬러가 자신의 논문에서 뒤샹의 <큰 유리>를 다루게 된 것은 이 작품의 포장을 풀자마자 이 작품이 평범한 것이 아님을 감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수년 후 키슬러가 페기 구겐하임의 의뢰를 받고 ‘금세기 예술’화랑의 설계에 착수했다.
그는 이 화랑을 디자인하면서 회화에서 액자를 떼 내고 캔버스를 구부러진 벽면 앞에 버팀목으로 지지시켰다.


이 방법은 그가 1924년 빈에서 개최된 새로운 극장기술 국제전에서 시도한 ‘공간전시’기법과 이를 실천하기 위해 고안한 L&T(Leger und Tr둮er)시스템을 발전시킨 것이다.


나아가서 추상회화작품이 걸려있는 곳에는 조각과 회화의 전시를 위해 천장에서 바닥까지 밧줄을 늘어뜨리고 그것을 이용해 작품을 공중에 매다는 전시기법을 보여주었다.
뒤샹이 ‘회화에’ 공간적 구조 개념을 도입시켜 ‘공중에 매다는 방법’을 시도했다면, 키슬러는 ‘회화 그 자체’를 ‘공중에 매다는 방법’을 실천한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뒤샹과 키슬러의 공통되는 컨셉으로 ‘공중에 매달기’를 들고자 한다.


뒤샹의 오브제 중 몇 개인가는 이미 ‘공중에 매다는 방법’을 이용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주위에 있는 금속으로 된 물레방아가 달린 가늘고 긴 홈 Glissi뢳e contenant un Moulin ?Eau en m럗aux voisins>(1914),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u descendant un escalier>(1915), <잘 휘어지는…여행에 대해서, 은밀한 자를 위한 접는식 조각 Pliant… de voyage, ?bruit secret>(1916), 그리고 1919년 여동생 수잔느에게 <불행한 레디메이드 Readymade malheureux>의 아이디어를 제시하면서 그것을 아파트 발코니에 매달도록 지시했다는 등이 그것이다.
이상의 예는 어떤 물체를 단지 공중에 매다는 정도지만 그 밖에도 많은 경우에 ‘공중에 매다는 방법’을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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